시스템과 상호의존성 - 물리학분야-

작성자
eco-research
작성일
2015-02-10 11:05
조회
518
 

복잡성의 과학: 자연 속에 숨은 질서

        

김 승 환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 아태이론물리센터)



목  차

 

  복잡성의 과학

  카오스와 비예측성

  기상의 비예측성

  밀가루 반죽과 나비효과

  시계추, 삼체문제, 그리고 카오스의 다른 예들

  자연의 기하학

  수학적 괴물들

  해안선과 프랙탈

  결정의 성장과 프랙탈

  카오스게임

  줄리아 집합, 만델브로트집합과 과학예술

  복잡계의 협동현상

  복잡성의 응용의 예들

  복잡성의 과학의 미래를 위하여




  복잡성의 과학


  흔히 과학은 혁명적 도약에 의하여 발전한다고 한다. 갈릴레오와 뉴턴의 고전역학은 물질, 힘, 운동의 체계적 이해를 가져온 하나의 큰 혁명이었다. 두 번째의 큰 혁명은 금세기초 상대론 및 양자론, 방사선이론과 함께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혁명은 넓은 영역에 걸쳐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미시의 세계, 거시의 세계, 그리고 복잡성 (complexity)의 세계의 큰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자연의 복잡성은 크게 불규칙한 시간적 운동인 카오스(혼돈, chaos), 복잡한 갈라진 공간적 구조인 프랙탈(fractal), 또는 시공간의 복합 구조로서 난류(turbulence) 등이 있다. 복잡성의 과학에서는 자연의 이해되지 않고 남아있는 부분인 복잡성을 연구하여 그 속에 숨은 질서를 찾아내고 이해, 제어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과학은 환원론에 입각하여 자연계의 규칙적인 질서 현상들을 근원적, 미시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다. 따라서 현대 과학의 발달로 자연의 규칙성에 대한 이해는 큰 진보가 이루어졌으나 복잡성으로 대변되는 불규칙하고 비예측적 현상은 예외적이며 비정상적 성질로 소외되어 왔다. 카오스(혼돈, chaos)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규칙적이고 질서적인, 예측가능한 운동과는 반대로, 일종의 불규칙적이며 무질서적인 비예측성 운동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카오스의 외관상 불규칙적인 운동의 이면에는 수학적 규칙성을 가진 질서구조가 숨어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완전한 무질서 혼란상태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프랙탈은 선, 면, 입방체등 매끈한 윤곽을 지닌 유클리드 기하체와는 달리 복잡하게 갈라진 모양을 가지며, 자연의 모습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프랙탈도 이면에 간단한 수학적 규칙성을 가지고 있어 무질서한 모양과 구별된다.

  복잡계의 연구를 위해서 새로운 방법론의 개발과 컴퓨터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지난 30년간 새로운 분야의 창출과 컴퓨터의 혁명적 발전은 카오스와 프랙탈을 포함한 복잡계 과학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한편 이러한 발전은 21세기 현대사회가 비예측성 및 복잡계 시대로 흘러들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21세기 들어 물질 자본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지식, 정보중심의 기반사회로 넘어가며  질서에서 혼돈으로, 대립에서 융합과 포용으로, 정적 세계에서 역동성으로, 수직, 획일성에서 수평, 자기조직성이 중시되고 있다. 국내 정치의 역동성, 다국간 국제 관계의 비예측성, 경제 시장계에서의 주식과 환율의 변동성,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상 등 사회, 경제, 정치적 현상에서도 복잡계의 원리인 작은 차이가 끝없이 증폭되어 불규칙적이고 비예측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사회가 디지털 지식 기반으로 재편되며, 저렴한 비용으로 정보가 광속으로 확산하고, 다원화와 예측불가능성이 부각되며 시장의 경쟁원리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술이 안정되면 표준규격품의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과 품질관리를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한다. 그러나 새 경제 체제에서는 끊임없는 차세대 기술의 개발과 경제 주체간 자기 조직적 협력이 중요해지며, 수확체감이 아닌 수확체증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 이러한 경쟁원리의 변화는 경제의 역동적 변화 및 개체간 상호 협력을 토대로 한 생태계적 질서를 만들어 내고, 이는 새로운 복잡계적 경제의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학자 에릭 홉스 봄의 지적대로 “극단의 시대인 20세기가 가고 21세기에는 분야간 경계선이 무너지는 다원주의와 복잡계를 대상으로 하는 새 문명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시오자와 요시노리는 이렇게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최근 진화, 면역, 뇌, 생물집단, 생태계 등 생물학계 뿐만 아니라 인구문제, 지구온난화, 산림감소 등 지구 환경계, 주식시장, 환율 등 시장경제계, 및 사회 문화 현상을 복잡계 (complex system)로 인식, 이해하려는 시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복잡계 연구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다. 미국 과학재단의 3대 과제중 하나는 환경 속에서의 생체 복잡성이라고 한다. 영국 물리학회가 20세기를 마감하며 물리학자들에게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 10개를 들라고 했을 때 “복잡성”을 선정했을 뿐 아니라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과제인 “기상예측”과 “난류”도 함께 꼽았다. 21세기를 시작하며 동아 사이언스가 선정한 현대과학의 8대 과제에도 복잡성의 과학이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기상 예측”과 “인공두뇌”의 문제가 뽑혔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계 과학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인가? 복잡계 과학의 실험은 과연 학문 간의 벽을 넘는 새로운 학제적 패러다임의 형성에 성공할 것인가?




  카오스와 비예측성


  옛날 사람들은 태초에 세상을 완전한 카오스로 보고 그들의 신들 중 하나를 ‘카오스’라고 불렀다.  동양에서도 혼돈이 생성과 창조의 근원으로 여겨졌으며 장자에도 보면 중국의 중앙임금이 혼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인간이 하루, 일년 등 자연계의 규칙적 운동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모든 자연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질서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는 뉴턴의 역학 법칙들의 발견에 의해 더욱 체계화되어 일식 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라플라스의 결정론적세계관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즉 어떤 주어진 순간에 우주의 모든 양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지적존재가 있다면 과거와 미래의 어느 순간에나 모든 양들의  위치와 운동을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세계의 미래는 초기조건에 의하여 과거와 마찬가지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자유의지의 존재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을 매우 당혹하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 도처에서 비예측성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주사위게임은 완전한 비예측성에  의존한다. 비예측성의 복잡한 운동은 바람들어간 풍선의 운동, 계곡물의 흐름,  커피 잔에서의 크림의 섞임, 비행기 날개 끝에서의 공기의 흐름 등에서도 발견된다. 불규칙적이며 무질서적인 비예측성의 운동은 놀랍게도 결정계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이러한 결정론적 무작위성, 결정론적 비예측성을 카오스라고 한다. 이러한 결정계에서의 비예측성은 매우 모순된 개념처럼 보이나 후에 언급될 나비효과에 의하여 생겨나며, 푸인카레 등에 의해 체계화 되었다. 즉 카오스는 뉴턴의 운동방정식처럼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계의 미래가 완전히 결정되는 결정계에서 관찰되는 무질서현상으로 외부잡음에 의해서 생겨나는 무질서현상이 아니다.

  카오스현상은 다양한 계에서 일어나고 외형상 연관되어 있지 않아 보이며 또한 너무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인다. 그러면 과연 카오스의 이면에는 아무런 규칙이나 질서가 없을까? 동전던지기의 경우 이전에 위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 다음에 위가 나올 지 아래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경우를 완전한 무질서라고 한다. 카오스는 불규칙성, 무질서성을 띄고 있지만, 완전한 무질서현상과는 다르며 그 안에 일정한 질서 구조를 갖고 있다. 자연계에서 관찰되는 불규칙성, 무질서성은 완전한 무질서는 거의 없고 대부분 카오스와 같은 성질을 가진다. 결정론적 세계관의 모순은 자연계의 비예측성 및 자유의지의 존재여부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으며 양자론에서의 불확정성원리의 등장에 의해 확률론적 세계관에 의해 거센 도전을 받아왔다. 그러나 결정론적 무작위성은 전혀 달라 보이는 결정론적 세계관과 확률론적 세계관을 연결시켜주고 상호 양립이 가능하게 한다.




  기상의 비예측성


  카오스의 이면의 질서구조는 1963년 MIT의 기상학자 로렌츠(Lorenz)에 의하여 처음 발견되었다. 기상현상은 온도, 기압, 바람의 방향 및 속도, 강수량 등의 많은 요인을 감안해야하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인데 그는 불 위에 올려놓은 물 냄비 안의 물의 대류모델과 같은 간단한 모델을 통해 기상현상을 이해하려 했다. 예를 들어 평평한 냄비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놓고 데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는 마치 지구표면의 공기를 태양열에 의해 데우는 것과 유사하다. 불이 충분히 세지면 냄비안의 더운 물이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물이 밑으로 내려오며 원통모양의 질서구조를 형성하는 대류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 냄비의 한점에서 시간에 따른 온도의 변화를 측정하면 시계추의 운동과 같은 규칙적 주기운동을 보이게 된다. 불을 더욱 세게 때면 온도변화가 매우 불규칙해 보이는 운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로렌츠는 이 불규칙성 이면에  자리한 규칙 또는 질서를 찾기 위하여 위상공간(또는 상태공간 - 이공간상의 한 점은 그 순간의 계의 상태를 나타냄)이라고 부르는 공간에 불규칙한 신호를 다시 그려보았다. 이 공간상에서 불규칙한 신호는 기하학적으로 재구성되어 그 이면에는 나비모양의 로렌츠끌개라고 불리우는 기이한 끌개(strange attractor)가 숨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카오스는 나비의 한쪽 날개 위를 도는 운동이  불규칙적으로 다른 쪽 날개로 넘어가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끌개는 위상공간상의 모든 점들을 끌어당기며 매우 안정된 구조를 만든다. 따라서 이 기이한 끌개의 구조와 그 위에서의 운동을 이해하면 기상 변화의 비예측성을 이해할 수 있다. 




  밀가루 반죽과 나비효과


  기이한 끌개는 무수히 많은 층으로 이루어진 매우 기묘한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구조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은 밀가루 반죽과 같은 과정에 의하여 만들어 진다. 정사각형 모양의 밀가루 반죽이 있다. 그 중 가운데 반이 검은색이라고 가정하자. 반죽을 2배로 늘려 펴고 반으로 자르면 다시 정사각형이 된다. 이제 검은 부분은 두 개로 늘어난다. 이 단계를 계속 반복하면 무수히 많은 까만 부분과 하얀 부분이 서로 교대로 층층이 배열되어 궁극적으로 반죽이 고루 섞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층층의 구조는, 프랙탈의 갈라진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 때 카오스의 비예측성 운동은 이 층층의 구조위에서 일어난다. 매 단계마다 밀가루 알갱이의 거리는 두 배로 늘어나고 끊임없는 팽창과 접힘 과정에 의해 처음엔 가까웠던 두개의 밀가루 알갱이들 간의 거리가  계속 크게 증폭된다. 예를 들어 처음에 밀가루 알갱이가 분자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면 100번만 늘리고 접으면  우주의 반대편 끝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초기의 미세한 차이가 크게 증폭되는 현상을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이라고 하며, 이를 나비효과라고도 부른다. 즉 최근에 개봉된 영화 “나비효과”에서 보듯이 북경에서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개 짓의 팔랑거림이 지구 반대쪽 뉴욕에서 폭풍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태풍 등 많은 기상현상은 흔히 비예측성을 보이며, 나비효과는 이러한 기상현상의 장기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이한 끌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의 운동을 로렌츠의 끌개처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의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은 이러한 점에서 카오스이론의 폭발적 성장에 크게 이바지하였는데, 컴퓨터를 통하여 로렌츠의 기상모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에서 기이한 끌개들이 발견되었다. 이 카오스현상의 이면에 있는 기이한 끌개들은 앞서 언급한 밀가루반죽의 경우와 같이 수많은 층으로 이루어진 아주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이 층층의 구조는 프랙탈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시계추, 삼체문제, 그리고 카오스의 다른 예들


  시계추의 운동은 결정론적 카오스를 보이는 가장 간단한 계중의 하나이다. 1581년 갈릴레오가 피사의 성당에서 램프를 가지고 실험했듯이 시계추와 같은 진자의 운동은 규칙성을 보이는 간단한 계이다. 즉 실에다 추를 매달아 밀어준 후,  자유운동을 하게  놔두면 일정한 주기를 가진 매우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이와 같은 단진자운동의 정확한 규칙성은 시계의 원리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단진자의 운동에도 카오스, 즉 결정론적 무작위성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단진자의 추를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밀어 준다고 가정하자. 이 단진자의 운동방정식은 수학적으로 아주 간단한 상미분방정식으로 주어진다. 이 때 이론적으로는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운동방정식을 풀어 미래의 어떤 순간에도 진자의 위치나 속도를 알 수 있다. 즉 진자의 미래는 초기조건에 의하여 완전히 결정된다. 이와 같은 간단한 결정계는 규칙적 질서현상만을 보이게 되리라고 생각되지만 약간의 섭동을 주면 앞서 이야기한 나비효과에 의하여 진자는 무작위성, 비예측성을 보이게 된다. 외부의 힘의 세기가 증가하게 되면 진자의 규칙운동이 사라지고 아주 다양한 카오스 현상을 보이게 되는데, 이러한 카오스로의 전이현상은 많은 다른 계에서도 관찰되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초기 과학자들에게는 태양계의 행성과 위성들의 운동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으며 이의 연구를 통하여 뉴턴의 고전역학 등 많은 자연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지구와 달의 운동, 또는 태양과 지구의 운동 등 만유인력하의 두 개의 물체의 운동은 뉴턴역학 및 케플러법칙에 의하여 이론적으로 완전히 이해되어 있다. 여기서 지구와 달의 이체운동에 태양을 포함시킨 삼체문제를 생각해보자. 이 간단해 보이는 삼체문제는 본질적으로 너무나 어려워 대 과학자 푸인카레도 "이 문제는 너무나 어려워 풀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후에 일반적 삼체운동의 이면에는 카오스가 자리하고 있고 그 구조가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최근에야 이 구조의 극히 일부만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그려질 수 있었는데, 카오스가 계층적 가지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마치 스파게티 모양으로 전혀 풀릴 수 없게 엮어져 있었다. 이러한 카오스의 구조는 태양계의 여러 삼체문제들, 예를 들어 화성과 목성사이의 소행성군의 운동, 토성 띠의 카시니 간극 문제 등의 이면에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태양계의 몇몇 혹성들의 공전주기들이 거의 공명관계를 이룬다는 것이 천체관측에 의해 밝혀졌는데, 이 공명의 이면에는 카오스가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혹성들의 궤도에 대한 누적된 영향을 계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가 과연 안정한 가에 대한 힌트를 제시해 주리라고 기대된다.

  결정론적 카오스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다른 예들로서는 담배연기의 규칙적 흐름이 나선형모양으로 깨지며 생기는 불규칙적 무질서한 운동, 심장박동 및 뇌파의 불규칙적 리듬, 수도꼭지로부터 떨어지는 물방울의 불규칙한 리듬,  지각에서의 마그마의 격렬한 섞임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카오스현상은 레이저 및 플라즈마의 불안정성, 초전도소자계의 전류특성, 전기회로에서의 기이한 잡음, 화학반응로 안에서의 불규칙성, 먹이와 천적간의 먹이쇠사슬모델, 주가동향, 스타디움형태의 당구대에서의 당구공 궤적의 비예측성, 지구 자극의 급격한 변동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자연의 기하학


  소나무의 가지치기모양, 산의 능선과 봉우리의 모습, 구름의 무정형한 패턴, 그 사이를 가르는 번개의 불규칙적 궤적등 주위에 펼쳐진 자연의 모습은 규칙성보다는 불규칙성을 많이 보인다. 오히려 규칙성은 자연에서보다도 인간이 만들어낸 건조물들에서 더욱 많이 보인다. 인공 건조물들은 매끄러운 선, 면, 입방체등 유클리드의 기하학으로 잘 기술되는 모양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의 모습들의  불규칙성은 좀 더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의 불규칙한 모양들에 숨어 있는 보편성을 기술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언어가 프랙탈기하학이다. 프랙탈(fractal)이란 만델브로트가 수학 및 자연계의 불규칙적 모양들에 대한 체계적 고찰을 담은 자신의 에세이에 표제를 주기 위해서 처음 만들어냈으며 부서진 상태를 뜻하는 라틴어 ‘fractus’에서 유래되었다.

  고사리의 경우 매끈하지 않은 윤곽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그 윤곽이 매끈해지지 않고 계속 불규칙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고사리는 큰줄기 위에 작은 줄기들이 가지쳐서 나오며 이 작은 줄기들에 또 더 작은 줄기들이 다시 가지쳐서 나오는 반복구조를 가지고 있다. 완전한 프랙탈의 경우 이러한 가지치기구조는 무한히 계속 반복된다. 가치치기구조의 반복으로 인하여 사물을 계속 확대해 볼 때 새로운 작은 불규칙한 모양들이 나타나고 그 전체를 닮은 부분들이 그 속에  무한히 뿌려져 있게 된다. 그 결과 그 부분을 확대할 때 전체와 닮은 모습을 주는 성질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자기유사성이라고 부르며 프랙탈이 가진 대표적 규칙성을 주게 된다. 이러한 자기유사성의 프랙탈 모양은 고사리잎의 가지치기 모양 뿐 아니라 전기의 방전모습, 눈 등의 결정의 성장모습, 마른 진흙의 갈라짐 모양, 금속의 부식에 의한 금 모양, 카오스 및 유체의 난류의 패턴, 해안선의 꼬불꼬불한 모양, 허파, 실핏줄, 신경망의 가지 구조, 불규칙적인 주가의 등락패턴, 분자들의 무질서운동의 궤적, 우주의 은하계의 비정규적 분포 등 분자부터 천문학적 단위까지 모든 척도의 자연계의 현상들에서 나타난다.

 



  수학적 괴물들


  1960년대 초 만델브로트가 비정규적 패턴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일단의 선구자적 수학자들에 의해 칸토르 집합 및 이차원 공간을 채우는 피아노 곡선등 수학적 프랙탈들에 대한 단편적 이론들만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아직 자신들이 발견한 비정규적 형상들간의 관계와 그 중요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고 프랙탈들은 극히 예외적인 집합 또는 괴물들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만델브로트에 의해 프랙탈 기하학이 만들어진 후 프랙탈들을 이해할 수 밌는 새로운 언어가 제공되었다. 이제는 프랙탈들은 피할 수 없고, 자연스러우며,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지닌 집합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프랙탈 이론이 많은 자연현상의 기술에 응용되고 급속하게 발전하는 컴퓨터의 그래픽스를 이용하여 매혹적 프랙탈들이 시각적으로 표현됨에 따라 과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프랙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프랙탈의 가장 간단한 수학적 예인 칸토르 집합은 다음과 같이 만들어 진다. 길이 1인 선분이 있다고 하자. 이 선분의 가운데 1/3을 잘라내는 것을 한 단계로 하자. 그러면 길이 1/3인 두개의 선분이 남게 된다. 그다음단계에서 두개의 선분의 가운데 1/3씩을 잘라내자. 그러면 1/9길이의 네 개의 선분이 남게 된다. 그 후 매 단계에서 남아있는 모든 작은 선분들의 가운데 1/3을 잘라내는 것을 계속 반복한다. 이 극한에서 칸토르 집합은 무한히 많은 점들의 집합으로 주어진다. 앞서 언급된 밀가루 반죽에서 까만 부분의 구조는 바로 칸토르 집합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칸토르 집합은 무한히 많은 점이 모였으나  전체 합한 길이가 0인  매우 이상한 집합이다.  그러나 이 집합은 프랙탈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즉 그 아무 부분이나 선택하여 적당한 배율로 확대해보면 전체를 닮은 자기유사성을 가진다.

  점, 선, 면 등의 유클리드 기하체의 경우 그 차원은 각각 0, 1, 2 의 정수로 주어진다. 프랙탈의 경우에도 차원이 정의되나  그 값이 비정수로 주어진다. 예를 들어 칸토르 집합의 경우 길이는 0이나 그 프랙탈 차원은 D=0.6309로 0차원의 점도 1차원의 선도 아닌 이상한 기하체이다. 또 다른 예로 코흐가 눈의 결정 또는 해안선을 모델하기 위해 만든 코흐곡선은 일정길이의 선분에서 시작하여 가운 데 1/3을 잘라내고 삼각형모양의 돌출부분을 만드는 변형과정을 매 단계에서 계속 반복하여 만들어진다. 선의 경우 가장 기초적인 양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코흐곡선의 경우 자의 길이를 1/3씩 줄여가며 길이를 재어 보면 그 길이가 매 단계마다 4/3배 만큼씩 늘어난다. 따라서  곡선의 길이가 재는 자의 길이에 따라 달라지고 자의 길이가 매우 작아지는 극한에서 길이가 무한대로 발산하는 매우 이상한 곡선이다. 이 코흐 프랙탈의 차원은 D=1.262으로 주어진다. 따라서 이 코흐곡선은 1차원의 선도 아니고 2차원의 면적도 아닌 그 중간의 기묘한 프랙탈 구조를 가진다.

  프랙탈 패턴의 한 특징은 위에서 보듯 무한한 복잡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칸토르 집합이나 코흐 곡선에서 보듯이 매우 복잡한 프랙탈들도 아주 간단한 법칙을 계속적으로 적용하여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컴퓨터에 아주 쉽게 접목될 수 있어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는 PC등 컴퓨터의 그래픽스를 이용해 누구나 매혹적인 프랙탈을 쉽게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아마추어들이 간단한 알고리즘을 컴퓨터에 주고난 후 스크린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프랙탈 패턴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을 때에는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해안선과 프랙탈


  코흐곡선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는 예로 만델브로트가 프랙탈의 예로 든 해안선의 경우를 살펴보자.  흔히 우리나라의 남서 해안선이 리아스식 해안으로 매우 복잡하다고 하는데 그 구조도 프랙탈으로 기술된다. 해안선의 길이를 재려면 우선 재는 자의 길이가  주어져야 한다. 자를 가지고 해안선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잴 때 몇 번 자를 썼는지 세어보면 해안선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해안선의 길이는 코흐곡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재는 자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왜냐하면 자의 길이가 작아지면 점점 더 작은 크기의 만과 반도를 고려해야하며 이들을 모두 따라가며 길이를 재게 되면 해안선의 길이가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고등학교 지리교과과정에 나오는 유한한 값의 지절율(=곡선거리/직선거리)은 잘못된 개념으로 재는 자의 길이를 명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재는 자의 길이가 0으로 가는 극한에서 해안선 길이는 무한대로 발산하게 되며 정의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랙탈 차원으로 길이가 발산하는 율를 기술할 수 있는데 이 값이 크면 클수록 해안선이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프랙탈 차원은 해안선의 복잡성을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해준다. 우리나라 남서 해안선의 계산된 프랙탈차원은 1.3 정도로 주어지는데 이는 영국의 서부 해안 (프랙탈차원 1.25)과 비슷한 정도의 복잡성을 가지며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해안(프랙탈차원 1.52)보다는 덜 복잡한  중간정도의 프랙탈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해안선뿐 아니라  남해 다도해 섬들의 면적의 분포, 더 나아가서는 강과 그 유역을 포함한 한국의 전체 3차원 지형의 복잡성이 프랙탈로 기술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결정의 성장과 프랙탈


  DLA성장모델은 눈의 결정이 자라는 것처럼 어떤 씨앗으로부터 복잡한 구조의 덩어리가 자라나는 것을 기술하는 아주 간단한 모델이다. 씨앗을 주고 씨앗으로부터 좀 떨어진 점에 입자를 놓는다.  이 입자가 술이 취한 사람처럼 무질서하게 돌아다니다가 씨앗을 만나면 영구히 달라붙게 한다. 이 과정을 새로운 입자들에 대해 계속 반복하면 씨앗으로부터 덩어리가 자라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보통 덩어리의 모양이 매끈한 표면을 가진 구형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과 달리 덩어리의 모양은 나무뿌리와도 흡사한 수상돌기구조라는 프랙탈 모양으로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장조건이 달라지면 수상돌기구조의 모양이 아주 다양하게 바뀌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DLA성장모델은 석유처럼 점성이 큰 유체가 물처럼 점성이 작은 유체를 밀어낼 때 그 경계의 구조가 매끈하지 않고 프랙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한다. 이 문제는 물로 석유를 밀어내어 땅속의 석유를 효율적으로 추출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엑손 등 석유회사가 연구하고 있다. 여기서 물과 석유가 프랙탈 경계를 가지면 대부분의 석유가 땅에 남아있게 되어 석유추출이 비효율적이 된다. 이외에도 시중에서 장식품으로도 팔고 있는 유리구 안에서의 전기의 방전패턴, 전기도금에서 금속입자들이 나뭇가지 모양의 돌기로 자라나는 것, 극한상황에서 접시에서의 박테리아 덩어리의 나뭇가지 모양 성장패턴에서도 프랙탈 구조가 관찰된다. 또한 이른 아침 창문에 낀 성에의 불규칙한 가지패턴은 자연이 만들어낸 카오스변환의 기이한 끌개에 해당한다. 망막의 실핏줄의 엉켜있는 모양, 신경망의 수상돌기모양 등 생물학적계에서도 프랙탈이 관찰되며 이들은 DLA형의 성장모델에 의하여 잘 기술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카오스게임


  앞서 이야기한 대로 카오스의 기하학적 구조는 프랙탈로서 카오스와 프랙탈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관계는 반슬리의 카오스게임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먼저 평면상에 세 개의 점 을 연필로 찍고  다시 평면상의  한점을 아무렇게나 골라 찍고 이를 P라 부르자. 세 점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그 점과  P의 중간지점을 찍는다. 이 스텝을 10,000번 정도 반복하고 처음 100개의 점을 지운다. 물론 이렇게 많은 점을 찍으려면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으며 그 규칙이 간단하여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 20줄 안팎이면 된다. 놀랍게도 이 게임은 그 무작위성에도 불구하고  복잡하나 규칙적 구조를 가지는 시어핀스키 삼각형이라 불리는 프랙탈을 만들어낸다. 흥미있게도 이 시어핀스키의 프랙탈과 비슷한 모양이 조개의 한 종류의 껍질에 새겨진 패턴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이 프랙탈과 비슷한 모양의 구조가 19세기에 프랑스 한 항구의 부두 방파벽을 만드는데 이용되었고, 1104년에 지어진 이탈리아의 한 성당의 바닥에 그려진 모자이크에서도 발견된다. 이 모자이크는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낸 프랙탈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가 아닌 가 본다. 그리고 최근 고사리의 모양 등 자연의 실제적 풍경을 그리거나 화상압축기술에도 응용되는 알고리즘들은 위의 간단한 카오스게임의 응용으로 주어진다.




  줄리아 집합, 만델브로트집합과 과학예술


  프랙탈은 복소평면에서의 간단한 수학적 변환에서처럼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도 나타난다. 복소함수의 반복점진은 20세기 초 수학자 줄리아와 파토우에 의하여 처음으로 체계적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만델브로트 등에 의해 컴퓨터로 그 복잡한 프랙탈 패턴이 처음 그려내어 진후 집중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줄리아 집합은 내재된 복소변환의 간단성에서도 불구하고 변수의 변화에 따라 두터운 구름층, 마른 가시나무, 개구리, 해마의 꼬리 등등을 닮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패턴들로 나타난다.

  복소 변환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프랙탈 구조인 만델브로트 집합은 이를 처음으로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연구를 시작한 만델브로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개구리 모양의 만델브로트 집합은 그 안에 줄리아 집합보다 더욱 더 복잡한 형태의 자기유사성을 지닌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만델브로트 집합의 경계가 곡선이지만 그 차원이 2로서 면적의 차원과 같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는 만델브로트 집합의 경계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곡선보다도 더 굴곡이 심한 복잡한 곡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만델브로트의 개구리의 가장자리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걸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무한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이제 과학자들은 만델브로트 집합은 너무나 복잡하여 이를 완전히 정확하게 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델브로트 프랙탈의 다양한 부분들을 확대하여 칼라로 표현하면 그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너무나 매혹적이다. 사실 만델브로트 집합 속에 무한히 많은 다양한 이미지들이 내포되어 있어 이들을 찾아내고  색깔을 칠하는 작업은 아주 흥미롭고 무궁무진한 일이다. 또한 만델브로트 프랙탈은 그 무한한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퍼스날 컴퓨터(PC)에서 단 20줄 정도의 프로그램으로도 그려낼 수 있으며, 지금도 호기심 많은 수많은 아마추어 탐험가들이 아직도 아무도 보지 못한  복소평면상의 프랙탈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학은 분석적이고 예술은 직관적이며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아오는데 익숙해왔다. 또한 흔히 수학을 비롯한 과학들은 무미건조하며 전화번호부만큼의 감동도 주지 못하며 예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독립성, 창의성, 미의 추구는 과학과 예술의 공통분모이며 과학과 예술은 자연을 경험하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방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는 전통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계에서 더 나아가 이제 숫자의 이면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던 연결성과 의미들을 화면표시장치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시각적 표현방식을 통해 자연의 과정들의 복잡함을 직관에 의하여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하여 그림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 연상이나 창의적 가능성들이 살아나게 되었고 컴퓨터, 과학과 예술과의 접목이 가능하게 되었다.

  만델브로트 집합을 이용한 과학적 예술에서는 예술가는 실현해 낼 이미지를 미리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대상인 제작방법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한다. 따라서 이들 예술가들은 만들어진 이미지들뿐만 아니라 이미지들을 만드는 과정과 어떤 창의적 기술들을 적용했을 때 나오는 효과를 이해하는 데 높은 관심이 있다. 이러한 방향은 과학에 있어서의 미의 추구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카오스와 프랙탈의 과학에서도 복잡한 운동 및 모습의 이해를 위해 그림을 통해 사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계의 간단한 근본법칙을 변화, 응용하여 무한히 복잡한 가운데 기묘한 질서를 가진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하나의 새로운 개념으로 출발한 프랙탈 기하학은 많은 자연현상의 기술에서 빼놓을 수 없으며 비정규적 모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주었으며 프랙탈들은 피할 수 없고, 자연스러우며,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지닌 패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는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시대이며 이제 컴퓨터와 과학은 더 이상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많은 아마추어들이 컴퓨터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프랙탈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컴퓨터 화상을 통한 예술작업에 까지 이용하고 있다. 앞으로 다음 세기에는 PC와 과학적 사고를 가진 젊은 세대들이 자라나 그들만의 야망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카오스와 프랙탈의 예술은  미래지향적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 분야의 발전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 지 카오스의 동역학의 리듬처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과학과 예술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에 돌이킬 수 없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복잡계의 협동현상


  한걸음 더 나아가 많은 수의 구성요소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복잡계의 경우 상호 협동에 의하여 어떻게 집단적 패턴이 창발적으로 생성되는 가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도 중요한 과제이다. 한 예로 타이의 정글에서의 반딧불의 불춤은 장관을 이룬다. 강을 따라 수많은 반딧불들이 모여 밤이 깊어감에 따라 깜박임의 리듬을 동기화 해나간다. 이러한 리듬은 지휘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딧불들이 스스로 상호작용을 통해 창발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1,000억 개의 신경소자들이 시냅스에 의해 회로망으로 연결된 뇌도 반딧불 과 같은 대표적 생체복잡계이다. 각 신경소자는 뇌의 언어인 전기신호 깜박임을 통해 다른 신경소자와 상호 의사소통을 하며 함께 깜박임 리듬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인간의 고급 인지활동이 이루어진다.

  카오스와 질서와 관계는 미묘하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질서와 카오스와의 관계가 완전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명한 과학자 호프스타더(D. Hopfstadter)는 질서와 카오스의 관계에 대해서 "질서운동의 허상 바로 뒤에는 기묘한 형태의 카오스가 숨어 있을 수 있는데, 이 카오스의 깊은 내면에 더욱 더 기묘한 형태의 질서가 숨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자연계의 많은 현상에서 질서와 카오스는 거울 양쪽의 실상과 허상처럼 분리될 수가 없다는 것인데 카오스의 미스터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복잡계의 경우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에서 기묘한 균형과 새로운 질서구조를 유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혹자는 복잡계는 카오스의 경계에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연의 경우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 1/f 잡음, 축척 법칙 등 많은 변동성 속에서도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복잡계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복잡계 과학은 전통적인 과학의 환원적 분석에 의한 접근 방법과는 달리 합성적인 전체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복잡계의 경우 비선형 성질과 비평형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조직화에 의해 변동성, 잡음, 요동 속에서 창발적 패턴과 규칙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복잡계의 생물학적 예로서는 반딧불 깜박임, 신경망, 심장박동리듬, 박테리아군집, 생태계, 면역계, AIDS역학, 생체대사망, 단백질 접힘, 유전학, 동물의 무리 짓기, 신경신호전달망 등을 들 수 있다. 물리화학계의 경우 초전도 배열계, 중간보기 양자계, 전하밀도파, 레이저와 플라즈마, 무정질 물질, 화학반응계, 화학 신호전달 망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기후변화, 난류, 해안선 변화, 알갱이 흐름, 교통흐름, 인터넷, 시장경제계, 사회 그물망들도 복잡계의 범주에 들어간다.

  복잡계 과학은 결정론의 붕괴에 따른 비선형 동역학적 접근, 환원주의의 붕괴에 따른 통계적 접근이 모두 요구된다. 복잡계과학은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다“는 특성을 가진다. 복잡계의 다양한 척도 (또는 무척도), 비선형성과 비평형성,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은 중요한 특성이다. 특히 이러한 자연계에서의 광범위한 복잡성의 발현과 보편성, 변동성의 규칙성, 환경으로부터의 자극과 요동, 적응과 진화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미국과학재단에서는 3대과제 중 하나로 환경 속에서의 생체 복잡성 과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구상의 다양한 환경에서의 물리적, 생물학적, 사회적인 동역학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생체가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생명을 유지, 변화, 적응해나가는 지를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복잡성의 응용의 예들


  카오스와 프랙탈 등 복잡성의 과학의 중요성에 대하여 하인스 페이겔스는 "이성의 꿈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진보한 사회는 이 새로운 개척지(복잡성의 과학)의 도전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한다. ... (중략) 새로운 복잡성의 과학을 지배해서 그 지식을 새로운 산물에 적용할 수 있고 새로운 사회조직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가 다음세기의 문화적,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생체 복잡계의 대표적 응용의 예로서 뇌를 들 수 있다. 뇌는 약 100억 개 이상의 신경소자와 소자당 1,000-10,000개의 시냅스들의 회로망으로 이루어진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이다. 뇌는 정도 크기의 분자에서부터, 시냅스, 신경 소자, 신경망, 지도, 신경시스템, 사람 몸 크기의 중추 신경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크기의 단계가 얽혀있는 망의 망이다. 따라서 뇌의 여러 단계를 연결하는 복잡계 접근은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한다.

  최근 양전자 단층 촬영 장치(PET), 핵자기 공명 장치, 패치 클램프, 형광영상처리, 다중전극기록 등 뇌 연구의 실험적 방법론의 발전과 함께 일부 뇌기능의 이해와 뇌를 동역학계로 본 모형화 시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실제 신경 소자의 기본 모형인 호킨-헉슬리의 오징어 축삭 모형은 비선형 상미분 방정식 형태의 동역학계로 주어진다. 이러한 동적 소자에 기초한 신경망 모형화, 반딧불의 깜박임과 같은 리듬 형성 등에 대한 비선형 동역학적, 또는 통계 물리적, 생리학적, 계산 인지 과학적 분석을 통해 물리학자, 생명과학자, 공학자, 인지과학자가 함께 새로운 생물학적 신경망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자 하고 있다.

  생물학적 신경망은 신경 소자간 상호 협동을 통해 동기화된 리듬 등 매우 다양한 거시적 비평형 패턴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신경계의 자기조직을 통한 복잡 다양한 패턴 형성의 이해는 뇌의 인지 과정의 모형화의 핵심 문제이다. 또한 신경망이 보이는 비평형성, 자기조직, 잡음과 요동성 등의 특성은 기존 환원적, 분석적 패러다임과는 다른 복잡계의 새로운 전일적, 합성적 패러다임의 형성을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신경계의 동기화 리듬의 문제는 화학 반응계의 진동, 초전도 조셉슨 접합 배열계의 전류전압특성, 반딧불의 집단적 깜박임, 박수의 동기화, 월경 동기화 등 다양한 자연과 생태계, 사회 현상에서 관찰되는 공통적 현상으로 보편적 기전의 이해가 요구되고 있다.

  복잡계의 또 다른 예로서는 시장경제계를 들 수 있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1997년 이후 외환위기, IMF와 금융시장 구조조정, 최근의 선물, 뮤츄얼펀드, 코스닥시장의 활성화 등을 거치며 물리학 등 금융 공학에 입각한 과학적 투자기법이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Rocket Scientist라고 불리는 NASA출신의 물리학자들을 포함한 과학자들이 금융 분야에서 일하기 위하여 월스트리트에 진출하였다. 현재 미국에서는 “월스트리트가 물리학 박사들의 가장 큰 고용주“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눈에 띄게 많은 수의 물리학자들이 큰 투자 은행이나 금융 산업에서 정량적 분석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복잡계의 관점에서 경제학과 물리학을 연결하는 새로운 학제간 분야가 태동되고 있으며, 금융을 비롯한 시장경제 현상도 물리학적 방법론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단의 물리학자들이 경제 물리(econophysics), 복잡계 경제, 경제시계열 분석 등 몇 가지 갈래로 시장 경제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공통적인 것은 시장경제를 비선형 복잡계로 보는 것으로 경제 복잡성의 체계적 이해를 추구하는 새로운 물리학의 패러다임의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명제들은 과연 효율적인 시장 가정의 결과인  시장의 마구잡이 성질과는 달리 금융시장의 가격지표는 예측 가능한 가, 또한 예측 가능한 조건은 무엇인 가 하는 것이다. 최근의 통계물리 및 비선형동역학, 복잡계 등의 물리학적 방법론을 이용한 시장경제 연구들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가격 요동의 이면에 자리한 보편적 상관성을 찾아내고 시장이 마구잡이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환율과 같은 시장지표가 보이는 복잡한 불규칙적 등락의 원인을 간단하게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오랫동안 경제학 모형은 신고전학파라고 불리는 주류경제학의 수확체감, 음의 되먹임 (negative feedback)에 의한 평형과 안정성, 양과 가격, 환원주의적 요소 분석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그러나 비정상성, 비예측성을 가진 복잡한 금융지표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역동적 실물 경제 현상은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최근의 복잡계 접근에 의한 경제학은 수확체증, 양의 되먹임에 의한 비평형성과 불안정성, 패턴 형성과 기능성, 통합주의적 전체의 원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복잡계의 경제학에서는 시장, 조직, 기관, 투자자들이 서로 비선형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경쟁, 적응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경제학적 선택에 의하여 동역학적인 진화를 하게 된다. 최근 많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는 인자기반 경제 모형은 복잡계 접근을 통하여 좀 더 실제적인 시장, 전략, 정보 구조에 기초하여 시장의 복잡한 학습과 적응 행동 동역학을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정량적 모형화를 통한 금융공학, 계산 속도 및 효율에서의 큰 발전, 복잡계 경제학의 도입을 통해 학계와 실무계에서 금융 연구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시장경제 분야에서 풍부한 현상학적인 데이터를 이용하여 물리학자들은 실제 문제를 이해하고, 데이터를 설명하는 데 동참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 나타나는 물리학자와 경제학자간 협력의 좋은 사례들을 장려하고, 양대 학문 간의 장벽을 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카오스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며 로봇 등 비선형시스템제어, 비선형시스템인식, 비선형예측, 신경망 칩, 카오스칩 등 여러 공학 분야에서 카오스이론이 응용되고 있으며 주가 등 경제지표 예측, 기상예측, 의료진단장치,  우주선의 효율적  컨트롤 등에 활용되고 있다. 한 예로 멀티미디어 및 HDTV시대에서는 디지털 영상의 엄청난 정보량의 처리가 매우 중요하며,  저장 또는 송신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화상의 정보량의 압축이 긴요하다. 반슬리의 카오스게임을 약간 응용한 IFS알고리즘은 단 몇 십 줄의 프로그램으로 자기유사성을 지닌 고사리,  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숲을 컴퓨터 스크린 속에만 존재하는 산, 구름, 나무, 호수들이 있는 자연풍경을 컴퓨터 세계에서 그려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복적 세분법이라는 프랙탈 알고리즘은 루카스 영화사에 의해 제작된 “스타워즈” 시리즈 중 "Return of Jedi"에서 혹성의 풍경 및 그 변형을 그리는 데에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카오스와 프랙탈의 규칙을 활용하면 거꾸로 복잡한 자연의 이미지들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압축할 수도 있다.




  복잡성의 과학의 미래를 위하여


  오랫동안  일반인의 인식에 있어 카오스는 통제될 수 없는 혼란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서양에서의 카오스는 질서가 없고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어둡고 악마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정복하고 다스려야할 어떤 대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혼돈은 "없음"과 마찬가지로 창조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혼돈을 즐기는 것에 곧 생성과 창조의 근원에 가까이 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신역 장자"에 보면 중앙의 임금 혼돈에게 눈, 코 등의 일곱 구멍을 뚫어주었더니 그만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춤추는 불꽃, 부서지는 파도, 하늘에 떠다니는 무수한 구름 등에서 보듯 카오스는 자연 속에서 불규칙한 듯 하면서 그 안에 어떤 규칙성을 가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인공적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무위이고 전일의 상태인 동양의 혼돈의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카오스가 질서와 예측성의 족쇄로부터 이제 해방되어 결정론적 혼돈이란 새로운 관점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자연의 무질서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기하학에서의 하나의 개념으로 출발한 프랙탈은 자연의 복잡한 패턴의 기술에서 빼놓을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주었다. 카오스와 프랙탈의 새로운 개념이 한번 받아들여지면 자연계의 버림받았던 부분들을 이해하게 되고 이들을 서로 얽어매는 유기적 전체의 원리를 생각하게 되며 세상은 이제 새롭게 보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카오스와 프랙탈의 과학은 하나의 혁명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카오스와 프랙탈로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각에서의 지적인 자극만으로도 유용할 수 있다.

  복잡계 과학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의 혁명적 변화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근본적인 촉매역할을 수행하였다. 경제학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신고전주의의 틀을 넘어 진화경제학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확산되었다. 아직 복잡계 과학의 실험의 평가는 이르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이를 추종하는 과학자들은 이 방향이 21세기의 주도적 흐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어차피 복잡계는 위에서부터 조종되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자발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복잡계 과학의 흐름도 같은 방식으로 외관상 무질서해보이는 흐름 속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질서를 만들어 낼지 자못 궁금하다.

  복잡계 과학은 단순한 과학적 연구로 그치지는 않는다. 복잡성의 과학은 근본적으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태학, 공학, 경제학, 경영학 등 그 적용범위가 매우 넓고, 학제적 특성을 가지고 학문의 벽을 넘는 것을 끊임없이 시도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21세기 과학의 미래는 복잡계과학과 같이 다양한 학제간 분야와 계산적 도구들의 합성 시도의 성공여부에 달려있을 지도 모른다. 복잡계 과학을 통해 창출된 복잡성을 다루는 새로운 개념과 도구들은 이미 과학의 한계를 벗어나 인문 사회 분야, 과학철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카오스 이론과 복잡계 과학 사상은 과학에서의 신과학 운동, 뇌와 인지기전, 진화 적응 경제학, 시스템 과학, 포스트모더니즘, 생태주의 사상 등 학문간 영역을 크게 넘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복잡계의 과학은 전통적인 과학관에 대한 단순한 반란에서 나아가 새로운 방법론으로 무장하여 주류과학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아직 복잡계 연구는 태동기로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응용이 많지 않지만 우리는 이제 복잡계 과학이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미국 록펠러대학 교수로서 저명한 과학평론가였던 하인츠 페이겔스가 예측한대로 21세기는 무한한 응용가능성을 가진 복잡계를 지배할 수 있는 나라가 세계의 초강대국이 될 것인가?




참고문헌


존 홀런드, `숨겨진질서-복잡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사이언스북스, 2001.

정재승, `과학 콘서트‘,  동아시아, 2001.

김승환 외, “생명정보와 물리학” 특집, 물리학과 첨단기술 10,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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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사실의 확인 혹은 패러다임의 변화?


홍 성 기 (아주대 교양학부)



목  차

 

I. 복잡성의 과학: 그 지위는 무엇인가?

  1. “복잡성”이라는 표현의 뜻과 영역

  2. 예측불가능성의 종류

    2.1 인식론적 예측불가능성

    2.2 존재론적 예측불가능성

    2.3 이상화(idealization)와 카오스

    2.4 비환원주의적 세계관과 환원주의적 시물레이션

 

II. 동양사상과 복잡성의 과학




  I. 복잡성의 과학: 그 지위는 무엇인가?


  철학이 물리학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유명한 사례로는 ─ 현대의 과학철학의 논의를 그 당위성으로 인해 일단 제외시킨다면 ─ 아마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아닐까 생각된다. 칸트는 뉴튼 역학을 사실상 “선험적 종합판단(synthetic a priori)”으로서 객관적 진리라고 간주하였고, ??순수이성비판 서문에서 그의 저작이 “선험적 종합명제의 존재가능성”에 대한 논의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설사 한 철학자가 물리학의 성과를 그의 철학체계 내에 도입하더라도 그것은 구체적이거나 세부적인 사항이라기보다는 대개 그 철학적 함축 혹은 과학적 지식의 철학적 근거를 다룬다는 점이다. 이점은 실로 개별 분과과학과 철학 사이의 위치설정과도 관련되어 있지만, 일단 전문적 수준에서의 과학적 논의에 철학자가 끼어 들 자리는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른 한편 물리학자가 철학의 직접적 영향, 혹은 철학적 성찰을 하는 경우는 ─ 원자론(原子論)이니 실재론(實在論) 등 과학자들이 숨쉬기처럼 당연시하는 ‘자연관’, ‘형이상학’을 제외한다면 ─ 생각보다 드물다고 보인다. 우리가 쿤(T. Kuhn)의 패러다임이론을 의미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정상과학기의 물리학자들은 그가 교육받고 연구를 하고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혹은 있다고 믿는 장(場)으로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떠날 필요도, 또 패러다임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사실상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과학자는 그의 활동이 단순히 과학 내의 이론 및 전통의 힘만을 빌어서는 충분히 해명되지 않을 때에만 철학적 행위로 넘어간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에서 그 해석문제라는 것이 제기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종이 위에 쓰여진 수학적 기술이 과연 세계의 무엇과 관계되는 지, 즉 양자역학적 존재들의 의미론적(semantic)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미시세계에서의 인과관계 및 논리적 원칙(배중률에 기반 한 고전논리와 그렇지 않은 직관주의 논리)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복잡성의 과학’에 대한 논의들은 필자의 일천(日淺)한 지식수준에 비추어 보아도 종래의 철학과 과학 혹은 철학과 물리학 간의 상호영향의 형태와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인다. 해서 논평자는 아래에서 김승환 교수님과 몇몇 복잡성의 과학과 관련된 문헌을 보면서 생긴 질문들, 즉 이해와 관련된 질문을 기술해 보고자 한다:


  1. “복잡성”이라는 표현의 뜻과 영역


  우선 ‘복잡성의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예를 들어 ‘단순성(單純性, simplicity)의 과학’이라는 가상적 개념을 머리에 떠올려 보면 분명해 진다. 특정한 영역이 주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단순성’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무엇을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마찬가지로 “복잡성의 과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사람은 그것이 ‘무엇들’에 대한 논의인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순” 혹은 “복잡(합)”이라는 표현은 철학적으로 볼 때 항상 상대적인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이 나무의 시각 상은 복합적인가, 그리고 어느 것이 그것의 구성 성분들인가?”라는 철학적[원 저자 강조] 물음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그건 ‘복합적’이란 말로 당신이 무엇을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이다. (그리고 물론 이는 대답이 아니라,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거부이다.) [L. Wittgenstein. 이영철 옮김.『철학적 탐구』§47]


  김승환 교수님의 발제문 및 몇몇 문헌을 볼 때 과학자들은 대부분 직관적으로 “복잡성(complexity)” 혹은 “복잡계(complex system)”라는 표현의 의미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하나의 계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성질로는 환원이 되지 않는 새로운 성질의 창발(emergence)이 있는 계를 ‘복잡계’라고 한다”고 하였을 때, “복잡계”라는 말의 외연(外延)은 지나치게 넓다. (순수하게 단일한 존재 및 그 존재의 이해를 가정하는 초강력 원자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복잡계는 어쩌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위의 비트겐슈타인이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복잡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벡터공간에서 단일한 힘도 여러 개의 힘의 복합체로 ─ 마치 백색광을 7개 혹은 6개의 빛의 합성으로 파악할 수 있듯이 ─ 구성할 수도 있고, 따라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는 더 작은 것을 더 큰 것의 복합 결과로서, 그리고 더 큰 것을 더 작은 것의 분할 결과로서 파악하는 경향도 있다(상게서 §48)”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복잡계”라는 표현은 특정과학의 기술적 용어로 사용되기에는 그 상식적 이해를 넘어가야 한다고 보인다.

  물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그 영역의 엄밀한 정의를 갖고 시작하는 경우는 차라리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복잡성의 과학’에 관한 논의에서 열거된 복잡계의 예들인 카오스, 프랙탈, 기상변화, 주식시장, 반딧불의 군무(群舞), 뇌의 기능 등등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앞에서 제시한 “복잡계”의 상식적 정의만으로는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들이 어떤 의미에서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로부터 구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추상적인 차원에서 공통으로 기술할 수 있는 일종의 모형(model)이 필요하나, 현재 이러한 모형이 만들어진 상태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 것 같다:



  복잡계 연구는 태동기로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응용이 많지 않지만 우리는 이제 복잡계 과학이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김승환. ?복잡성의 과학: 자연 속의 숨은 질서?)


  따라서 복잡계의 최소한의 정의가 갖는 광범위함을 고려할 때 ‘복잡성의 과학’이 갖는 지위는 ‘검증된 가설’도 ‘검증될 가설’도 아니라고 판단된다. 즉 복잡성의 과학의 위치는 그 차원이 구체적인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의 차원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시각의 변화, 바꿔 말해 자연을 보는 접근 방법의 변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초창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통적인 과학의 분류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학문 간의 경계를 넘나들음이 복잡성의 과학에서는 거의 상식적인 수준에서 논의되고 또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을 목표로 하는 물리학의 이론이, 주식시장이나 경제활동처럼 이론이 곧바로 그 대상영역에 개입할 수 있는, 이론과 현상사이에 일종의 되먹임(feedback)이 가능한 영역과 아무런 구별 없이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다. 물리학 이론이 자연세계의 법칙을 바꾸지는 않지만 경제이론이 경제활동은 물론, 경제활동의 법칙도 바꿀 수 있다[예:공산주의 운동]. 어쩌면 이처럼 복잡성의 과학은 그 광범위성으로 인해서 종래의 결정론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접근에 대한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인다. 잘 알려졌듯이 ‘결정론’이나 ‘환원주의’는 특정한 가설이나 이론이 아니고 현상에 접근하는 형이상학적 틀인 것이다.




  2. 예측불가능성의 종류


  2.1 인식론적 예측불가능성

  김승환 교수님과 여타의 문헌에서 복잡성의 과학은 카오스와 프랙탈 이론과 밀접한 관련 하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김 교수님의 글을 보면 복잡계는 카오스와 프랙탈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인다.  다른 한편 카오스 현상은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성으로 인해서 오차를 무한히 작게 만들지 않는 한(스튜어트 카우프만, ??혼돈의 가장자리??) 정확한 장기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결정론적 무작위성, 결정론적 비예측성”을 카오스라고 한다면, 카오스적 비예측성이란 사실상 인식론적인 문제라고 생각된다. 즉 자연은 결정론적으로 운행되지만 앞에서 말한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성으로 인해 카오스현상은 현실적으로 인간 및 도구의 제한된 인식능력으로는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카오스 현상의 인식론적인 측면은 이 현상의 배후에 로렌쯔 끌개 및 프랙탈 등 단순한 규칙성을 원리로 갖는다고 하여도 변하지는 않는다.





  2.2 존재론적 예측불가능성

  다른 한편 복잡계가 단순히 카오스와 프랙탈과 동일시되지 않는다면, 복잡계의 비예측성은 인간의 인식능력의 제한에서 오는 것만이 아닌, 대상 영역의 구조와 본질이 원래 그런, 즉 존재론적인 비예측성을 포함하고 있는 듯 하다. 논자들은 여기에 양자역학적 불확정성과 인간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자유의지 문제를 포함시키려는 듯하다(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에 대한 비판과 불만족은 아마도 물리학의 최종목표와 관련하여 인식론적인 불확정성이 존재론적인 불확정성으로 간주되는 경향에 대한 것이다).


  2.3 이상화(idealization)와 카오스

  이 양자의 차이는 존재론에 대한 인식론적인 뒷받침을 항상 요구하는 구성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연 및 여타 영역에 대한 접근방법의 원칙적 한계와 관련된 논의에서는 일단 중요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식론적 비예측성에서는 기존의 환원주의적 결정론을 ‘현상에 대한 원칙적 접근 방법’으로서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단기예측과 장기예측과 관련하여 오차의 범위가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할 경우 우리는 기존의 과학이론을 수립하고, 현상을 설명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항상 있어왔던 이상화와 오차한계의 문제가 이러한 인식론적 비예측성과 어떻게 다른 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 결정론적 뉴튼 역학의 혁혁한 성공적 예로서 간주되는 행성의 움직임도 적절한 이상화를 가정하였을 때에만 가능하고 현실 그 자체로서는 카오스라고 한다:


  행성은 태양 이외에 다른 행성과 위성의 영향을 받으며 또한 완전한 공이 아니라서 세밀하게 관측하면 카오스 운동이다. 소행성과 혜성에서는 그것이 뚜렷하게 관측된다. (이노우에 마사요시, 강석태 옮김, ??카오스와 복잡계??의 과학, 51쪽)


  만일 결정론적 비예측성으로서 카오스현상이 이상화의 종류와 측정오차한계의 상대성으로 해석된다면 카오스 현상의 새로운 측면은 도대체 무엇일까? [여기서 현대의 자연법칙이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이상적 조건이 만족되는 실험실의 결과와 연결될 수 있고, 이러한 점은 자연법칙이 현상의 관찰에서 오는 규칙성(regularity)이 아니라 일종의 잠재력(potential power), 성향(disposition) 등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카오스현상은 과학자의 이상화된 이론 모형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그 자체가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님으로 생긴 일종의 ‘자세히 살펴봄’의 결과는 아닐까?


  2.4 비환원주의적 세계관과 환원주의적 시물레이션

  다른 한편 존재론적 비예측성, 즉 자연이나 대상영역 자체가 원래 환원주의적 접근에 의해서 비결정론적이라면 우리는 기존의 자연에 대한 접근방법 자체를 재검토 내지는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도 자연을 왜 이해하려고 하는지, 자연의 이해가 무엇인지와 그 현실적 가치 등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문제는 ‘복잡성의 과학’에서 비록 비환원주의적, 전일론적(全一論的, holistic), 자기조직(self-organization) 혹은 자기촉매적 접근을 강조하지만, 서구적 전통에서 “복잡계”의 정의 자체에 ‘계(system)’나 ‘전체(whole)’ 이전에 존재하는 ‘요소(element)’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는 한 ─ 설사 부정적으로라도 ─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한 비환원주의적, 전일론적 접근방법이 가능한지 매우 궁금하다. 존 홀런드의 ??숨겨진 질서??에서 ‘복잡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CAS)’라는 일종의 복잡계를 컴퓨터로 모의실험(simulation)하기 위해 제안한 방법도 기본적으로는 일곱 가지 기본요소에 기반을 둔 환원주의적 모형이다. 특히 김승환 교수님도 강조하였듯이 카오스와 복잡성의 과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컴퓨터의 역할을 그것이 기존의 고전적 논리계산에 기반을 둔 선형적 방법이든 아니면 카오스적 뉴랄-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비선형적 방법이든 요소주의를 [완전히] 떠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복잡성의 과학이 추구하는 바는 자연이나 대상영역 자체의 탐구라기보다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있다고 해야 할까? 앞에서 언급한 이노우에 마사요시의 책의 후반에는 인간의 인지기능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시뮬레이션들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는 ‘상(像)의 전이(轉移)’, ‘패턴의 인식’, ‘이중언어 습득과정’, ‘해석학적 순환’ 나아가 ‘간질’의 이해에 이르기까지 카오스적 뉴랄-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새로운 컴퓨터 모형들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 아직까지는 ─ 이러한 컴퓨터 모형들이 뇌와 인지기능 자체에 대한 모형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즉 로봇과 인간의 능력이 흡사한 것이 있더라도 로봇의 기작과 인간의 기작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인지기능에 대한 과학자의 이러한 겸손함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의문이지만.] 여기서 물리학의 목표가 만일 현상의 시물레이션으로 그친다면, 문제는 그 내부기작에 있어서 매우 많은 종류의, 심지어는 서로 모순되는 구조를 갖는 시물레이션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어쩌면 고전적 물리학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학이론의 민주사회’가 등장할 경우 서구의 과학자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II. 동양사상과 복잡성의 과학


  앞에서 ‘복잡성의 과학’과 관련하여 논평자가 의문점으로 생각한 여러 측면들은 어떤 방향성이 있다고 보인다. 그것은 복잡성의 과학이란 ─ 여러 번 반복하지만 ─ 어쩌면 특정한 영역에서의 구체적 이론의 측면과 함께 무엇보다도 자연과 인간들에 의한 현상들에 대한 접근방법, 형이상학의 전환이라는 점이다. 이 접근 방법의 전환들: 계를 이루는 요소 자체보다는 요소들간의 관계를 강조한다든지, 부분보다는 전체, 이상화된 모형보다는 구체적 현실, 날카로운 선형적 논리보다는 유연성의 강조 등은 “카오스”라는 용어가 “혼돈(混沌)”이라는 노장(老莊)적 개념과의 유사함에서 오는 친화성과 함께 눈에 띄는 특징들이며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동양사상의 특징적 측면들에 속하는 것이다. [“동양사상”이라는 불특정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양해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서구의 ‘최첨단의 복잡성의 과학’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우 비과학적으로 간주되어온, 해서 “심오한 지혜”, “직관의 세계”, “도(道)의 세계” 등 분석적 전통에 기반을 둔 서구철학과 서구과학의 큰 물결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폐적 담장을 세워야만 했던 동양사상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이제는 지금까지 철저히 출입을 제한하였던 동양사상의 문을 활짝 열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논평자는 이 지점에서 양쪽 진영 모두에게 얼마간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첫째, 지금까지 그렇게 결정론적이고 환원주의적 전통을 전면에 내세웠던 서구의 분석적 계열의 철학과 제반 과학이 별안간 ‘유행’이 변하듯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에 대한 본능적 의구심이다. 그것도 동양사상의 핵심과 매우 유사한 방향으로! 그러나 김승환 교수님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문헌에서 “복잡성의 과학”은 아직 구체적 성과로 입증된 분야가 아님으로 우리는 미래에 있을 혁혁한 성과에 대한 ‘어음’은 받았는지 모르지만 아직 ‘현찰결제’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과거에 서양과학과 철학에 의해 비과학적 전통으로 간주되었던 동양사상이 이제는 과학적 전통과의 접목이나 의사소통도 가능하다는 판정을 다시 서양과학으로부터 받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사상의 구조적 가치를 믿는 논평자와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경제가 잘 안 돌아가 부도가 날 경우’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 뿐 아니라, 항상 기준은 대양의 건너편에 있고, 그 기준을 세운 자는 바로 자기가 세웠다는 이유에서 그 기준을 바꿀 수도 있다는 비대칭적 게임에 질려있기 때문이다.

  둘째, 논평자가 볼 때 ‘복잡성의 과학’이 추구하는 바와 ‘비슷한’ 접근방법과 계의 성질, 예를 들어 앞에서 열거한 ‘부분에 대한 전체의 강조’, ‘미시적 분석보다 거시적 성질에의 주목’, ‘비환원주의적 접근’, ‘개체보다는 관계의 강조’ 등은 구체적 차원에서는 한의학적 전통에서, 추상적(범주적) 차원에서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로 이미(어음이 아니라 현찰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은 존재와 관계의 이중적 측면을 “모든 法(dharma)들의 상호의존성”으로, 구체적으로는 ‘분할(partition)과 조합(configuration)’의 이중적 관계로 압축한 것으로서 단순히 윤리적, 비유적 언명이 아니라, 이 세계의 구조에 대한 ‘찔러도 피도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냉정한’ 이해이다. 즉 구성요소로서 연기론의 법(法)의 측면은 환원주의적 접근방법을, 관계로서 연기론의 상호의존적 측면은 전일론적 접근방법에 대한 단초임이 좀 더 널리 이해되고 응용되어야 한다.[참고: 연기론을 바탕으로 음양오행설의 재해석이 가능하다고 논평자는 믿는다.]

  한편 음양오행설이란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비환원론적인-왜냐하면 분류(taxonomy)와 관계 맺음의 두 단계에 기반을 둔 서양의 과학전통과는 달리 오행론에서는 분류와 관계가 동시에 발생하며 이점은 항상 논리적 순환성으로 나타난다고 보인다. 상생(相生)?상극(相剋)의 관계를 이용하여 일종의 되먹임조절(feedback control)을 통해서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유지시키는 거시체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구의 ‘복잡성의 과학’이 주식시장이나 경제변동, 기후, 뇌기능 등 좀 더 광범위하면서도 인간의 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분야에서 보여주려는 인상 깊은 컴퓨터 시물레이션 등이 음양오행설과는 아직 연결되지 않고 있어, 이 오래된 동양의 자연관을 매우 낡은 것으로 간주하도록 만들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우리는 음양오행설의 현대적 해석과 응용에 대하여 ─ 무속적(巫俗的)?비교적(秘敎的) 차원이 아니라 ─ 너무 등한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른 한편 복잡성의 과학의 여러 가지 측면들은 동양사상의 학도들이 서구철학과 과학에 대항하여 지속적으로 그 우월적 측면으로 강조하여 왔다는 사실과, 이 새로운 경향이 매우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제는 동양사상을 “단순히 한도인(閑道人)의 한가로운 세계”로만 묘사하는 것은 ‘가보(家寶)의 방치’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현재 동양사상과 서구의 과학전통의 교차점은,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보안관과 총잡이,  홍콩영화의 협객과 검객들이 잠시 등장하다 사라져 버리는 텅 비고 황량한 촬영 세트장과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서로 다른 액션영화의 전통은 각자 그대로 고수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황량한 세트장을 실제 사람이 북적이는 국제도시로 바꿀 수 있을까? 있다면 왜, 없다면 왜 그러할까?































(토론문)

“복잡성의 과학: 자연 속에 숨은 질서”에 대한 논평문


이 정 언 (부산대 동남권부품소재산학협력혁신사업단)



목  차

 

토론에 들어가며

기계론적 환원주의 과학

유기론적 현대 물리

복잡성 과학의 현실화를 위한 과제




  토론에 들어가며


  과학사가들은 과학적 패러다임이 변할 때 세계 자체도 변화된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이에 대한 접근을 통해 본 논제의 서두를 풀어보고자 한다. 과학의 개념적, 또는 학문적 의미는 근세기에 정립되었지만, 인간의 생존 또는 생활의 역사와 더불어 과학은 수많은 모습으로 인간과 대면하여 왔다. 과학은 마술, 연금술 등과 같은 하위적 개념으로 이해될 수도 있으며, 철학과 종교와 결합하여 상위적 개념으로도 또한 이해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과학이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사고의 방법이란 점이다.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수많은 과학적 현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 현상에 대한 궁극적 고찰은 인간의 생활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토마스 새무얼 쿤은 과학적 변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정상과학 ―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과학적 기반을 둔 연구 ― 의 변화 인 패러다임 개념(기법)을 이용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뉴턴,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과학적 패러다임을 경험하였고, 그 결과에 의해 사회는 변화하였으며, 그 변화의 모든 요소는 지금의 사회적 양태에 녹아 있다.

  쿤의 패러다임 기법을 확장 시켜 과학적 변화를 크게 세 부분으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문명사회 이전의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마술과학이다. 엄밀하게 보면 마술과학은 인간이 자연과 가장 친밀하게 교감한 과학적 행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인간 사회가 조직화 및 체계화로 추구됨에 따라 사실상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진화의 과정을 밟지 못했다. 두 번째,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뉴턴까지 장기간에 걸쳐 정립된 기계론적 환원주의 과학, 그리고 세 번째는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이후 진행되어 온 유기론적 과학 등의 분류이다. 발제자이신 김승환 교수님의 비선형계의 복잡성 과학은 현대 물리의 양자역학에 그 원류를 두고 있다. 따라서 본 논제를 고전물리학에 의해 도출된 과학적 방법과 현대 과학적 사고 방법의 비교를 통해, 향후 복잡계의 사회 시스템 적용성에 대해 토론하고자 한다.




  기계론적 환원주의 과학


  고전물리학의 기본적인 개념은 환원적이고 선형적이다. 과학에서 환원주의(還元主義)란 모든 복잡한 현상을, 이것을 형성하고 있는 구성성분으로 환원시킴으로 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환원주의 사상을 체계화시킨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물질의 세계는 하나의 기계이며 기계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자연은 기계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물질세계의 모든 것은 각 부분의 배열과 운동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과학사상의 일반적인 구조에 대하여 완전한 기계장치로서 정확한 수학적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다고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 데카르트의 이와 같은 자연관의 꿈을 현실화시키고 구체화시킨 사람은 바로 아이작 뉴턴이다. 그는 기계론적 자연관을 완전히 수식화시켜 발전시켰으며, 이로써 그 이전의 대가들 ―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베이컨, 갈릴레오, 데카르트 ― 의 이론을 총 집대성하였다.

  뉴턴에 의하면, 절대공간 그 자체의 본성에 있어서,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없이 언제나 동일하며 정지의 상태를 계속한다. 즉 “절대적이고 진정한 수학적 시간은 저절로 그 자신의 본성에 의하여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없이 한결같이 흘러간다”라고 하였다. 태초에 신이 물질 입자와 그들 간의 힘 및 운동의 근본 법칙을 창조했다고 보았다. 이렇게 해서 전 우주는 운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불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기계처럼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계론적 자연관은 거대한 우주 기계가 완전히 인과적이며 결정적인 엄격한 결정론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고전물리학적 개념에서, 우주 체계는 어느 부분의 미래도, 그 상태가 어느 때라도 모두 자세히 알려지기만 하면 절대적 확실성을 가지고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Laplas, P.S.)는 “어떤 주어진 순간에 자연에서 작용하고 있는 모든 힘과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위치를 알고 있는 분석력이 매우 뛰어난 지성이 있다면, 그는 세상의 가장 거대한 것들의 운동과 아주 미세한 원자들이 똑같은 공식에 의해 운동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미래도 과거와 같이 확연히 그 눈앞에 보인다는 것이다.

  분명, 데카르트, 뉴턴, 갈릴레오, 라플라스 등의 자연관찰자들의 이 엄격한 환원주의적 개념은 사회?문화적 변화를 유도해 왔다. 프랑스 혁명으로 표출된 시민사회, 산업혁명으로 유도된 부르조와적 근대민주주의, 이에 대응적 사회체계인 사회주의, 그리고 현대의 지구 분열적 사회구조를 낳았다. 아직도 선형적, 결정론적 자연인식이 매우 강하며, 이를 토대로 인간은 자연과 사회를 운영하고자 한다.




  유기론적 현대 물리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과는 대조적으로 현대 물리학의 세계는 유기적, 전일적 그리고 상대적이다. 우주를 무수한 물체로 만들어진 기계로 보지 않으며 하나의 분할할 수 없는 역동적인 전체로서, 그 부분들은 근본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과정의 패턴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정교한 자연 관찰자의 눈을 통해 자연은 더 이상 기계가 아니었다. 인과성에 의한 우주관은 철저히 부서져 버렸다. 절대적 공간과 시간의 아성이 무너지자, 자연은 관찰자의 눈에 의해 비쳐질 따름이었다. 아원자 세계에 대한 관찰을 세밀하게 하면 할수록 유기적인 세계관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질 수 있었다.

  아원자 입자들은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호작용의 불가분의 망(網, network)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망 속의 상호작용은 확정적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 연결될 뿐이다. 아원자 입자는 독립된 실체로서는 의미가 없고 , 관찰과 측정의 여러 과정 사이의 상호 관계 또는 상관관계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즉 아원자 입자 ― 우주의 궁극적인 부분 ― 는 독립된 실체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호관계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이다. 아원자 수준에서는 전체와 부분 상호간의 관련성과 상호작용은 부분자체 보다 더 근본적이다. 카프라는 이 세계에 대해, 운동은 있으나 운동체는 없다. 활동은 있으나 활동체가 없는, 무용수는 없고 오직 무도(舞蹈)만이 존재하는 우주라고 하였다.

  이러한 우주의 특징은 상대적이고, 역동적이며, 자기조화적(self-consistency)이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모델이 물리학자 츄(Geoffery Chew)가 제시한 구두끈(bootstrap) 가설이다. 그에 따르면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소립자(hadron)’는 상호작용의 연결망을 형성하며, 그 속에 각각의 입자가 다른 입자의 생성을 도우며, 이렇게 생성된 입자들은 다시 그 입자를 생성한다. 즉 어느 한 부분의 속성은 다른 부분의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현대 물리에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가상적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상대적인 역동성에 의해 형성된 망(그물)은 양의 피드백에 의해 작용하는 열린계이다. 지금은 생물 사이버 네틱스, 사회 사이버네틱스, 전략이론, 인지과학, 통신이론, 멀티미디어 이론, 시스템 이론 등의 수다한 정보과학 이론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기계론적 지식체계를 벗어나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사이버네틱 사회의 전조를 내포하고 있다. 20세기 초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고전 물리학적 패러다임의 한계점이 드러난 이후 말 그대로 과학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발제자인 김승환 교수님의 논제는 고전 물리의 선형적 자연의 구조 해석적 방법이 아닌 또 다른 자연 해석 방법인 복잡성 계의 자연적 패턴에 세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 토론자는 현대 유기체론적 자연관인 복잡성 비선형역학의 특성을 바탕으로 과학과 사회의 결합점에 대해 몇 가지 측면에서 숙고해 보고자 한다.



  복잡성 과학의 현실화를 위한 과제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해 왔다. 때론 자연에 반항하여 왔으며, 때론 자연과 공존하였고, 때론 자연을 지배하려는 마성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불간분이며, 그 특성은 결코 선형적이 아닌 비선형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과의 공존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생태적인(ecological)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환경의 문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위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환경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환원론적인 관점이다.

  자연과 사회의 통합적 연계 메카니즘이 환경이다. 여기서 환경은 ‘환경적인(environmental)’ 개념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생태적인(ecological)’ 개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전자의 경우 다분히 환원주의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생태적인 시스템은 발제자가 주장한 바와 같이 비선형계의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 복잡계는 열린 계(open system) ― 불연속적인 인지 시스템(cognitive system) ― 이며, 창발적 확산으로 특징지워지는 양의 피드백, 그리고 이로 인해 작용하는 ‘자기조직화’라는 강력한 개념을 창출한다. 복잡계는 자기조직화의 패턴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쿤(T. Kuhn)은 ??과학혁명??에서, “과학이론이나 법칙이라고 하는 것도 그 패러다임이 위기에 놓이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고 하였다. 절대 유일의 패러다임이나 법칙은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의 법칙이나 패러다임은 일정한 시점에서 과학자 집단의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면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상과학이라고 생각했던 패러다임의 이론적 결점이 발견되고 과학자들이 점차 기존의 패러다임에 회의를 갖게 되면 과학은 위기에 놓이게 되고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게 된다.

  이 점을 고려한 현 시점에서 본 토론의 주제인 복잡계는 과연 과학자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인증되고 있는 정상과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본 토론자 또한 생태학적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또한 그 방향으로의 변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으나 과연 지금의 문화적 층층구조가 이와 같은 사회적 패러다임을 수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카오스는 노장의 현묘(玄妙)의 세계이다. 음의 안정성과 양의 확산성이 조화를 이루는 열린 시스템의 세계이다. 열린 시스템은 복잡성 수학으로 표현되는 비선형 역학의 아름다운 율동에 의해 역동적인 자기조화를 이룬다. 이 세계는 인과론에 의해 결정되는 의도된 통제의 사회가 아니다. 자기조화를 이루는 각 부분들 간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는 다스림이 없는 사회, 모두가 주인인 사회이다. 자연과 인간의 분화가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 인간은 양이고, 자연은 음이다. 자연을 통해 인간이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음의 피드백이 작용하는 닫힌 시스템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 스스로가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양의 피드백이며 열린 시스템이다. 열린 시스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은 서로 통일적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를 ‘생태적 사회(ecological society)’라 한다. 그러면 생태적 사회를 이루기 위한 모델을 구축할 때, 카오스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는 앞에서 논의한 내용을 구체화한 것일고 할 수 있는데, 복잡성 수학을 바탕으로 한 유기체론적 사고의 틀이 단순한 자연적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문화적 틀을 이루는 근간으로서 그 이론적 역할(어떤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우리 대학(부산대)의 산학협력사업단은 한국산업단지 공단과 국가산업단지 활성화를 위한 방안에 대하여 전문가 들이 모여 숙의한 바 있다. 국가주도의 지역균형발전전략, 산업활성화를 위한 산업단지 클러스터 구축, 산?학?연 컨소시엄 유도 등과 같은 정책적 접근은 결국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산업단지 내 각 기업들의 자연발생적이고 자발적인 목적을 창출하여 상호 역동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서 자기조화를 구축할 때, 진정한 기업들의 산업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중세의 길드 또는 우리 전통의 계모임일 것이다. 환원주의적 자연이해의 모방으로 구축된 결정론적 통제 사회 시스템의 한계성을 사회 일각에서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이루는 자기조직적인 열린사회 시스템은 분명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그 사회의 사회 구성체계에 대한 가시적 그림을 그 어느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토론 주제를 제공해 주신 김승환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토론을 마치도록 하겠 습니다.   (2004년 12월 18일)


























(토론문)

한의학에서 생명시스템의 상호의존성

-생태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신 흥 묵 (동국대 한의과대학)



목  차

 

I. Ecological view: 생태적 세계관의 정립

  1. 인체의 생명장과 자연의 생태계는 동일체

  2. 인체는 소우주로서 하나의 생태환경 - 환경보호의 중요성

 

II. 인체의 전체론과 시스템적 인식 

  1. holistic body - 유기적 정체

  2. 인체의 시스템적 인식

    1) 음양론(陰陽論)

    2) 오행의 유기적 계통론

  3. 경락(?絡)과 인체의 생리시스템

  4. 자연과 인간의 선순환생리




  인류는 현재 환경의 파괴와 오염, 정보의 홍수와 인간관계의 메마른 정서 등에서 오는 총체적 위해와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 나아가 환경(대기)오염은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자로서 생태학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음.

  과학은 무질서속의 질서를 찾고 체계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복잡성은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과학의 대상으로 생각되며 인간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의문은 복잡성의 과학으로 접근, 숨은 질서의 이해와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생각됨






  I. Ecological view: 생태적 세계관의 정립


  1. 인체의 생명장과 자연의 생태계는 동일체


- 천인상응(天人相?), 인신소우주(人身小宇宙) 등 초기 한의학 형성의 주류를 이루는 사상이었음.

- 생체의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끊임없는 변화의 인식은 한의학적 특성이 살아있는 시스템의 상호연관성

   예) 肝?通於春, 心?通於夏, 脾?通於長夏, 肺?通於秋, 腎?通於冬

        양생과 생활방식의 이론

        十二?脈者 五?六腑之 所以?天道也



  2. 인체는 소우주로서 하나의 생태환경 - 환경보호의 중요성


- 소우주(小宇宙)로서 인신(人身)은 대우주(大宇宙)인 지구환경과 연계되어 있다. 특히 호흡기(코-인후-폐-피부) 및 소화기(입- 인후-위장)와 개방계통을 형성하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 대기 및 환경오염(다이옥신 환경호르몬)은 호흡기를 통해, 식품의 오염은 소화기를 통해 체내의 생태환경의 변화를 초래 성인병, 만성난치성 질환으로 이어진다.

- 나아가 환경오염은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와 연계되어 인체의 생리계통과 신진대사가 일어나는 생체복잡계의 변화에 의해 조직기관의 구조적 변화는 물론 기능적 변이에 의한 질환의 발생을 증가시키고 있다. 암, 당뇨, 고혈압 및 면역질환은 이러한 환경오염과 지구 생태변이에 따른 필연적 체내 환경변화로 이어진 질환군으로 생각된다.

- 서구에서의 정신수양으로서의 명상, 요가; 식생활에서의 유기농과 well-being 개념의 유행은 생태학의 중요성과 인간의 유기적 상관성을 제시하고 있다.

- 따라서 환경 보호와 보전은 self repair(자연치유력)를 증진시키는 최선의 치료


  


  II. 인체의 전체론과 시스템적 인식 


  1. holistic body: 유기적 정체


- 분석을 통한 문제제기보다는 전체가 가지는 완전성에 대한 특성과 속성의 이해에 바탕한 holistic healing을 추구.

- 인체는 분리된 부분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전체

-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2. 인체의 시스템적 인식


  한의학은 인체에 존재하는 불규칙한 생명현상의 복잡성을 분석하고 기술하기 위해 유기적 전체론의 시스템적 원리를 적용하였으며, 대표적 이론체계로서 음양(陰陽), 오행(五行) 및 경락(?絡)의 체계를 학문적 시스템으로 채택하였다.


  1) 음양론(陰陽論)

- 우주의 자연현상과 인체 생명현상의 인식을 위한 최소단위의 시스템론 - 2진법, 음양의 조화 - 인간의 남녀, 동물의 암수, 밤과 낮, 해와 달, 볼트 너트 등 가장 심플하고 쉬운 상대적 가치관과 인식의 기본 틀

- 인체의 장부(?腑), 기혈(?血), 경맥(?脈)에 음양특성의 부여, 기능인식의 패턴화

- 사상의학(四象??)


  2) 오행의 유기적 계통론

- 인체의 장부 조직 기관은 오행의 계열로 체계화되어 있고, 오행의 생극(生克)으로 생명현상을 제어 조절

- 간담의 시스템적 구조 = 木의 계통성=간담의 생리 및 질환 치료의 기본적 구조

   ·간-담-눈-손톱-혼의 정신세계- 분노의 감정-근육- 足厥陰肝?-足少陽??

   ·오행론을 통해 눈(目)이라는 감각기관과 간(肝)이라는 장부와 근(筋)이라는 인체 구성요소를 같은 계통으로 놓고 있음

- 제3의학의 태동; 진단 시 맥진(脈診)에서의 임의적이고 산만한 맥상(脈?)의 복잡성을 28맥의 형태로 규정하고 음양의 구분은 생체복잡계의 현상에 대한 법칙성의 부여로 시스템적 의학이 가지는 장점이고 미래의 의학이 추구하는 예방과 질병치료에 대한 새로운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


  3. 경락(?絡)과 인체의 생리시스템


- 기(?)순환의 시스템적 인식

- 경맥(?脈)을 통해 침을 놓는 부위인 경혈(?穴)은 하나의 계통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또 이는 오장육부의 하나와 상호연계성을 맺고 있다.

    예) 수 + 태음+ 폐경 = 手太陰肺?,  족 + 태음 + 비경 = 足太陰脾?

- 경맥에 의한 생명현상의 패턴은 온도에서의 한열(寒熱), 습도에서의 조습(燥?), 풍도에서의 기류현상으로 구체화시켜 생명활동에 적정한 체내 환경을 유지하고, 자연계의 기후변화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십이경맥자 오장육부지 소이응천도야

    (十二?脈者 五?六腑之 所以?天道也)


  4. 자연과 인간의 선순환생리


- 자연의 生長化??에 의한 발생-성장-통합조화-억제-봉장의 순환구조는 인간의 生長老病死의 출생-성장-노화-이환(罹患)-사망의 순환으로 인식되며, 자연계에서의 ?과 인간 사(死)는 생명의 씨앗과 생명력을 잉태하는 과정이며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 자연과 인류의 선순환의 도덕성과 순환구조론 속에서 인간은 환경생태와 마음의 안식처를 위한 불교생태학에 대한 관심의 유도를 고조시킬 필요성이 제기됨

- 이는 생명력의 보존과 보다 건강한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기본적이고 절실한 운동으로

- 우주의 地力과 청정한 대기환경의 유지

- 인체의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의 발현으로 행복한 지구촌을 형성하게 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