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과 상호의존성

작성자
eco-research
작성일
2015-02-10 11:02
조회
517
 

Part I. 생태학 분야


 


 


 


 


 


 


 


 


 


 


생태학에서의 시스템과 상호의존성


이 도 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목  차

 

1. 시작하며

2. 체계와 전일론

3. 전일론과 생태학

4. 상호의존의 매개자

5. 불교에 대한 기대

따로 보기: 생태학에서 찾는 상호의존의 보기




  1. 시작하며


  생태학을 간략하게 정의할 때 “생물과 생물 그리고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한다(이도원 등 2001). 여기서 특별히 의미를 가지는 단어는 ‘관계’다. 생물학의 한 분야로 발전하기 시작했던 생태학에서 생물 자체는 애초부터 필수적인 단어였으며, 환경은 생태학이 생물학의 다른 분야와 차별성을 가지기 위해서 특별히 강조하였으니 그 또한 당연한 단어다.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성을 규정하는 말이 ‘관계’가 된다.

  체계이론(system theory)이 생겨나는 데는 생물학자들이 공헌했다. 발견되는 수많은 생물종의 나열하는 목록을 조직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주목한 말이 체계이다.1) 그러나 기재적(descriptive) 방식으로 자료를 정리하던 생물학자들의 체계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수학을 주요 연구 수단으로 삼는 학문영역과 만나면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이론으로 성숙한다. 물론 그런 체계이론은 유용성을 인식한 많은 분야가 동참하면서 이제 특정 영역의 독점물이 아니라 범학문적인 바탕이 되었다.

  생태학 분야에서는 특히 생태계생태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발굴하는 과정에 구성요소들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학문영역에서 발전시킨 체계이론을 활용하는 역사를 거친다(Odum 1994). ‘관계’가 주요어인 생태학에서 체계이론을 차용한 것은 당연하며, 그 과정에 체계이론 분야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성과물도 도출하였다. 그리하여 생태계이론과 체계이론은 서로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영역이 주고받는 것들을 모두 묶어서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에 대한 필자의 해답은 유보하고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 논의거리로 남겨놓는다.


  이 글은 체계이론과 관련이 있는 생태학의 입지와 둘의 공통적인 관심사로서 소통의 다리가 되는 ‘관계’와 ‘상호작용’ 또는 ‘상호의존’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생각해보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짧은 지면이라는 제약과 필자의 학문적인 한계 때문에 생태학과 체계, 그리고 상호의존의 속내를 시원하게 풀지는 못한다. 불교생태학을 겨냥하는 전제로 시작된 글이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희망을 표기할 뿐 뚜렷한 단초를 제시하지도 못한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분위기에 동승하여 공부를 하기 위해 말문을 여는 하나의 작용자가 될 수 있길 희망할 뿐이다.




  2. 체계와 전일론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 체계이론을 가장 집요하게 이용하고 발전시킨 생태학자는 하워드 오덤이다(Odum 1983, 1994). 그는 방대한 저서 체계생태학(systems ecology) 앞부분에서 체계를 어떤 종류의 과정에 따라 상호작용하고 있는 부분들의 집단이라 정의한다. 이 정의는 굳이 생태학에서 다루는 대표적인 계인 생태계(ecological system 또는 ecosystem)뿐만 아니라 일반계(general system)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오덤과 같이 체계이론에 기반을 두고 생태적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공통성은 환원론적 접근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으며, 유기론적 접근을 하나의 대안으로 보는 태도이다(Jorgensen, 2002).

  유기론(organicism)이라는 말은 1919년은 리터(W.E. Ritter)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2) 나중에 그는 전체(a whole)는 부분들(parts)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부분들의 질서정연한 협력과 상호의존성에 의해서 유지될 뿐만 아니라 그 부분에 결정적인 통제력을 작동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Ritter & Bailey 1928, Mayr 1997 재인용). 그 무렵 유기체에 대한 전일적 견해(holistic view)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전체는 단순하지 않다. 혼합성을 가지고 있으며(composite),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기체와 같이 자연적 전체는 한 부류나 다른 부류들이 활동적인 관계를 이루고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많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복합성(complexity)을 지니고 있다.3) 그리고 그 부분들 자체는 유기체 안의 세포처럼 전체성이 적다(Smuts 1926, Mayr 1997 재인용). 이 기술은 나중에 생물학자들에 의해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a whole is more than the sum of its parts)'라는 간략한 표현으로 압축되었다(Mayr 1997). 이처럼 1920년대 이후 유기론과 전일론(holism)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체계이론의 주요어로 전일론이 여전히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생물학에서는 동의어로 유기론이 더 자주 사용된다(Mayr 1997).




  3. 전일론과 생태학


  전일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생태학은 통합적 접근을 강조한다(Kingsland 2004). 그러나 전일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구방법들이 충분히 도출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게 말하는 가장 큰 근거는 전일론적 태도를 견지하는 생태학 분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봉착한 문제들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는 전일론적 접근이 생태학에서 충분히 성숙할 때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사실 생태학은 통합과학을 표방하면서 태생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속성 때문에 주요 연구 대상으로 생물을 이루는 하위 단위뿐만 아니라 비생물적 요소까지 동시에 아울러야 하는 처지다. 결과적으로 생태학은 생물을 다루면서 생물외적인 문제로부터 자유스럽지 않다. 굳이 생명 활동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물리학이나 화학, 대기과학과 지질학 등의 다른 자연과학 분야의 입장과 사뭇 다르다. 근래에 환경 변화가 인간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인식이 깊어짐에 따라 인문사회과학적 내용까지 배려하기 전에는 생태학의 굳건한 줄거리를 마련할 수 없다는 고민도 안게 되었다(이도원 2002). 한편으로 환원적 접근으로 성공사례를 쏟아놓는 분자생물학과 한 울타리에 있으면서 후원을 받기보다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어려운 위치에서 쉽게 가름할 수 없는 큰 문제와 씨름하는 힘겨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런 처지에서 생태학은 전일론이라는 개념을 지향하는 한편 내용을 구체화하는 과정에는 환원론적 연구방법에 의존하고 있다(Pickett 등 1994). 전일론이라 하여 환원적 연구방법을 배제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은 거의 전적으로 후자에 의지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다. 아직은 개념에 걸맞은 연구방법을 개발하지 못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된다.

  현재 생태학에서 전일론적 관점에서 생태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생태계 개념에 대한 위계이론의 적용이 주목을 받고 있다(O'Neill 등 1986). 오덤 형제들이 1987년 크라푸우드상(Crafood Prize)을 공동수상하는 행사의 특별강연으로 생태계의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나 파급 효과를 끌어내지 못했다(Odum 1988). 생태학 분야에서 이해를 할 수 있는 생태학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회복되는 과정이 비선형적이고, 복수의 끌개(multiple attractors)를 지니고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점에 착안하여 복합계 이론의 적용도 시도하고 있다(Anand & Desrochers 2004). 그러나 무척 제한적인 숫자의 생태학자들만이 위계와 복합계 이론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분석을 활용할 수 있는 실정이다. 이는 생태학계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복합계를 다룰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 생물학 분야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상호의존의 매개자


  우리가 오늘 화두로 삼고 있는 상호의존성은 체계의 구조를 이루는 요소가 있고 그 요소들 사이의 어떤 기능 또는 과정이 일어난다는 전제에서 논의된다. 그러면 구조는 무엇이며, 구조의 특성을 규정하는 기능의 실체는 무엇일까?

  체계이론(system theory)에서 구조와 기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박창근 1997).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요소들 사이에 있는 분포 관계의 총체를 구조라고 한다. 여기서 분포 관계는 그 체계 내부에서 각 요소들이 처한 위치와 점유한 범위 그리고 배열상태를 말한다. 구조를 이루는 집합체의 요소들 사이에 일어나는 활동 관계를 기능이라 한다. 여기서 활동이란 요소의 각종 운동, 변화 또는 작용을 의미하고, 활동관계는 한 요소의 활동이 다른 요소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 한 요소의 다른 요소에 대한 작용, 또는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상호침투, 상호배척들을 가리킨다.

  공간의 이질적 속성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생태계생태학에서는 구조와 기능을 생태계를 이루는 생물적 비생물적 요소로 기술했다. 20세기 말에 생태학의 주요 분야로 성장한 경관생태학에서는 생물 요소뿐만 아니라 공간 요소들의 어울림을 구조와 기능으로 기술하면서 차별성을 가진다. 생물학에서 시작한 생태학은 초기에 생물과 생물 요소들의 숫자와 생물량을 비교하여 개체군과 군집의 구조를 기술하는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중에 탄생한 생태계 생태학에서는 흔히 생산자와 소비자, 분해자로 불리는 생물들과 비생물적 인자들의 상대적인 크기를 구조로 보았고,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에너지와 물질 흐름을 기능으로 보았다. 한편 경관생태학에서는 에너지와 물질, 생물, 정보 분포에 관한 특성으로 경관 요소의 공간적 크기와 형상, 수, 종류, 분포 유형 등을 구조라고 하며, 경관 요소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와 물질, 생물종 그리고 유형/무형의 정보 흐름을 나타내는 공간적인 요소의 상호작용을 기능이라 한다(이도원 2001).

  이처럼 생태학에서는 작용체(작용을 매개하는 실체)를 크게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정보로 구분한다.4) 생물학에서 시작한 생태학은 거의 대부분 에너지와 물질이라는 작용 실체의 이동으로 생태계 기능을 기술했다. 이러한 접근은 20세기 전반부에 겪은 세계대전을 계기로 진행되었던 기술적 전략적 발전에 의해 크게 진작되었다.

  체계의 특성은 작용체의 이동과 분포 양상에 의해서 결정된다. 체계의 범위가 되는 경계(boundary)는 체계와 체계 그리고 체계와 환경을 나누는 선이며, 작용체의 교환이 낮은 곳에서 나타난다. 또는 체계가 자신을 외부와 구분하기 위해 작용체의 교환을 최소화하는 곳에 경계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는 경계를 드나드는 작용체를 선택하고 교환 속도를 조절하여 외부와 상호 의존하는 정도를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계가 하나의 체계라면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정보의 이동이 낮은 경계에 의해서 나누어질 수 있는 하나의 실체라야 한다.

  체계생태학의 중심이 되는 생태계라는 단어는 전쟁을 치루는 동안 이루어진 물리적·화학적 분석 기법 및 전략적·수학적 접근 그리고 체계이론의 발달과 함께 학문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Schlesinger 1989).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나타난 군사수학 모형 연구는 제 2차 세계대전에 OR(operation research)로 발전했고, 전후에는 체계공학과 함께 우주비행과 생태, 인구, 사회경제 그리고 행정 관리 등의 분야에서 응용되었다(박창근 1997).

  미국생태학회에서 게재불가 판정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스승인 허친슨(G.E. Hutchinson)의 강력한 추천으로 비로소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린더만(Lindeman 1942)의 획기적인 논문은 생태계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에너지 흐름의 정량적인 접근을 시도한 첫 작품이었다. 에너지 분석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은 역시 분석 기법의 발전이었다. 불행하게도 린더만은 그 논문이 게재된 직후 스물일곱의 나이로 요절하고 오덤(Eugene P. Odum & Howard T. Odum) 형제들에게 사명과 기회를 넘겨준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사회학교수로 지역주의(regionalism)를 주창한 아버지(Howard W. Odum)의 영향을 받은 이들 형제는 생태학을 전공하는 동안에도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두 학문세계의 연결 고리로서 생태계 개념의 유용성을 인식하고 열역학 개념을 생태학으로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도원 등 2001).

  그 배경에는 새(bird) 연구에서 출발하여 생물종과 군집 그리고 생태계 수준의 과정을 천이 특성과 연결시킨 형(E.P. Odum 1969)의 학문적 역량과 제 2차 대전 당시 기상장교로 활동하면서 익힌 동생의 독특한 경험에서 얻은 개념들 그리고 수학적 훈련의 상승작용이 있었다(H.T. Odum 1957). 형제들의 협동으로 발굴한 생태계의 에너지와 물질 흐름에 대한 정량적인 자료는 당시의 생태학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Golley 1994). 체계생태학 분야에서는 선취권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 동생 오덤의 생태계의 기능 분석은 거의 대부분 에너지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 경계가 분명한 호소생태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라이컨스(G,E. Likens)가 삼림생태학자 보-만(F.H. Bormann)의 박사후연구원으로 맺은 인연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들은 분수령이 경계가 되는 유역을 생태계의 단위로 보았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물과 영양소 이동을 정량적으로 기술한 실험으로 육상에서 생태계 개념을 적용시키는 길을 열고 생태계생태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다(Bormann & Likens 1967, Likens & Bormann 1995). 여기에 철학과 수학, 물리학을 공부하고 일반체계이론으로 무장한 미국 오크릿지국립연구소(Oak Ridge National Lab)의 연구진이 수행한 공동연구(O'Neill 등 1986)는 생태계에서 에너지와 물질의 경로와 과정, 저장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더 높이는 활력소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생태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의 상호의존 특성을 기술하는 데 에너지와 물질은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상호의존성의 중요한 작용체가 되는 정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생태학 분야로 깊숙하게 들어오지 못했다. 생태학이라는 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정보 개념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그것을 구체화시킬 연구 방법 또한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계를 구성하는 구성요소들의 상호의존이 에너지와 물질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체계의 성격을 규정하는 주요소가 전달되는 정보의 작용이라면 가야 할 길은 멀다. 필자는 에너지 흐름과 물질 순환의 원리에 대한 실마리뿐만 아니라 정보 개념의 성숙에 불교가 생태학에 무언가 공헌할 길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5. 불교에 대한 기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생태학은 생물과 생물,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경관생태학으로 오면서 이제 생물의 환경과 환경의 관계를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하나의 숲과 다른 숲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설명할 때 두 숲 사이를 오가는 생물은 작용체가 된다. 작용체의 이동 양상이 바로 관계와 상호의존을 설명하는 하나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생태계로서 하나의 도시와 다른 도시의 관계를 이해하자면 정보라는 작용체의 정체도 알아야 한다.

  다루어야 할 공간적 내용적 용량이 늘어나면서 오늘날의 생태학은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되었다. 이렇게 다가서는 많은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학문세계는 난감한 입장에 놓였다. 주어진 숙제는 현실이며, 그것을 넘어설 방향을 모색하는 일은 하나의 큰 사명이다. 그런 사정이라 무궁한 내용(contents)과 개념을 담고 있는 불교는 생태학 분야가 희망을 걸 수 있는 세계이다.

  불교에 대한 얘기를 할 수준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글이 불교생태학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었기에 때문에 감히 언급을 해본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직 필자는 생태학과 불교의 접목 가능성을 내다볼 자신이 없다. 혹시라도 인연이 닿아 자리를 함께 하는 분들이 실마리를 이끌어낼 수 있길 바라며 일부러 한두 가지 자료를 찾아보았다.

  ??금강경??에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가르침이 있다. 상호의존성의 강화는 나누어졌던 것들의 하나 됨과 관련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금강경??의 표현은 세상의 완벽한 상호의존성에 대한 언급이다. 체계를 이루는 물질이 공간적인 거리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그 물질 요소를 꿰고 있는 어떤 끈 또는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전체가 된다. 비유하자면 진주 목걸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원래 떨어져 있었지만 끈의 이음을 통해 하나가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 끈을 통해 뗄 수 없는 상호의존성으로 목걸이라는 하나의 실체 또는 체계를 낳는다. 내 얕은 지식으로 보면 ??금강경??은 내가 큰 내게 이어져 있는 끈을 알아내야 한다는 교훈을 말한다.

  하나로서 내 몸의 기능은 팔 따로 다리 따로 나누어 분석한다고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몸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의 완벽한 상호의존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무엇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계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구성 요소 전체가 긴밀한 상호의존성 안에 놓일 경우를 말한다. 생태계의 운행에 관여하는 여러 인자들이 모두가 서로 나눌 수 없는 흐름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체계가 된다. 나눌 수 없는 무엇에 대한 분명한 이해에 도달할 때 생태계 수준에 대한 전일적 접근의 성취로 볼 수 있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직접적으로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암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생태학 연구에 공헌할 수 있는 자극제를 지니고 있었다.

  다시 ??금강경??을 보면 비슷하지만 체계이론의 다른 측면을 함축하는 구절이 보인다. “작은 법을 좋아하는 이는 나라는 소견, 남이라는 소견, 중생이라는 소견, 오래 산다는 소견에 집착하여, 이 경을 능히 알아듣고 읽고 외운다든지 남을 위해서 해설해 주지 못한다.” 작은 법에 의지하면 큰 위계(hierarchy) 안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끈 또는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5)

  이는 오늘날 대표적인 체계 이론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위계 개념(concept of hierarchy)의 특성을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생태학 분야에서 정리한 위계 개념에 의하면 상위수준의 실체는 하위수준의 (1) 맥락, (2) 통제자 그리고 (3) 제약요소가 되며, (4) 상대적으로 반응속도가 느리고, (5) 변화빈도가 낮으며, (6) 하위수준을 포함하고, (7) 공간적?시간적 규모가 크며, (8) 완결성이 낮은(중심특성이 분명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진다(이도원 2001). ??금강경??은 하위수준의 구성요소를 잇고 있는 끈과 그것들을 아울러 상위 수준을 만드는 끈은 다르며 작은 법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후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치를 말하고 있다. 좁은 공간과 짧은 기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으로 세상을 보는 하루살이가 우주를 하나로 묶는 어떤 흐름을 생각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금강경??의 표현과 비유하자면 전일론과 체계이론으로 생태계를 연구하려는 사람들은 큰 법을 꿈꾸고 있다. 그들은 하위 수준의 체계를 아우르는 끈이 있듯이 상위 수준에 작동하는 다른 끈이 있다는 가설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큰 법을 꿰뚫고 있는 끈을 볼 수 있는 눈(연구방법)을 갖추지 못한 형편이라 가설을 검정하지 못하고 있다. 큰 법이 소인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니 애초부터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큰 법을 이해하는 눈을 갖추는 데는 더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불교와 생태학을 연결하려는 시도도 그러한 노력에 포함되지만 큰 법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역시 쉽게 성사될 일은 아닐 것이다.

  불교생태학은 가르침에 대한 불교와 생태학의 이해 방식의 차이를 인정하는 한편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키울 때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불교계의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넘어 개념의 바다가 되는 불교에서 실마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중생의 이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생태학 분야의 태도도 진작시켜야 한다.




  따로 보기: 생태학에서 찾는 상호의존의 보기


  생물에 대한 관찰이 생태학 연구의 중심이던 개체군 생태학과 군집 생태학에서 두 생물의 관계는 긍정적(+), 부정적(-), 그리고 중립적(0)으로 표시되기도 한다(이도원 등 2001). 한 생물이 다른 생물에 위의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를 가진다면 두 생물의 관계는 이론적으로 생기는 9 가지 관계 중에 하나가 된다. 생태학에서는 이러한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를 경쟁(--), 포식(+-), 기생(-+), 편리공생(+0), 협동 또는 상리공생(++)으로 부른다. 이러한 작용의 조합으로 두 생물의 상호의존성을 나타내자면 (00)이 가장 약한 경우라 주장해도 된다. 그러나 상호의존성이 가장 강한 경우는 무엇일까?

  직접적으로 긍정적 또는 부정적 작용을 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길게 볼 때 더 삶을 풍성하게 하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세상살이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부정적 작용 또는 곤란을 통해서 상호 의존할 수 있는 길을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서 말하였으니 생태학이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지만 언젠가 학문적 수준으로 고려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문헌 자료를 제공하지 못해 보기로 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물고기를 장거리 운반할 때 포식자 한 마리를 수조에 함께 넣어 수명을 연장시키는 기술은 그러한 생태적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부정적 영향을 주는 포식자가 어느 정도 피식자의 삶에 활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워싱턴대학교의 동물생태학자 페인(R.T. Paine) 교수가 진행한 실험은 부정적으로 보이는 작용이 조금 복잡한 체계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Paine 1966). 페인은 먹성 좋고 흉악한 포식성 동물인 불가사리가 생태계에서 무슨 쓸모가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바닷가에 늘려 있는 일부 웅덩이에서 7년 동안 계속 불가사리를 몽땅 잡아내면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보았다. 언뜻 생각해보면 이런 놈이 사라질 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듯하지 않는가?

  그런데 예상 밖의 결과가 일어났다. 시간이 지난 다음 불가사리가 없는 웅덩이에서는 오히려 생물종 다양성이 줄어들었다.6) 포악한 불가사리는 흔한 종들을 잡아먹어 심한 경쟁을 제어함으로써 희귀한 종들도 살아갈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가사리라는 상위포식자가 없는 웅덩이에서는 힘센 녀석 한 종이 설쳐대는 바람에 약한 종들이 살아남지 못했다. 처음에 15종이 있던 웅덩이에는 나중에 8종만 살아남았다.

  페인의 연구 결과는 우리 삶에서 곤란처럼 다가오는 교란(disturbance)도 생태계에 반드시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낳았다. 실제로 불가사리가 웅덩이에서 과도하게 점유하는 생물을 먹어치워 빈 자리를 만들고 그 곳으로 새로운 생물이 들어와서 전체적으로 지역의 생물종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 노쇠한 산림생태계에서 산사태나 태풍, 산불, 또는 홍수와 같은 교란이 새로운 생명들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바다의 불가사리 역할과 비슷하다(Turner  등 1997, Swanson 등 1998).

  뿐만 아니라 상호의존성은 어떤 조건 아래서 유리한 입지를 가질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일 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두 생물이 가지는 협조 관계가 생존에 필수적이 아닌 협동(cooperation)도 있지만 공조가 생존에 절대적인 상리공생(mutualism)은 위험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된다. 어느 한 쪽이 더 이상의 협력관계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맞거나 타격을 받으면 다른 쪽도 생존하기 어려운 처지가 된다. 다음과 같은 상리 공생이 체계의 지속가능성에 어떻게 작용할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소나무는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 견디어내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부식토와 습기가 많은 계곡보다는 바위투성인 능선에서 소나무가 관찰되는 것은 그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열악한 조건에서 견디어내는 데는 균근이라는 곰팡이 종류의 도움을 받는다. 송이버섯은 그러한 균근의 일종이다.

  토양에 포함된 영양소가 풍부하지 않고, 또 적은 양의 영양소가 흙 알갱이에 강하게 달아 붙어 있는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소나무는 송이버섯과 긴밀한 상호의존 전략을 갖추게 되었다. 소나무는 광합성 산물인 유기물을 송이버섯에 공급하며, 송이버섯은 그 유기물을 이용하여 가는 균사를 토양 구석구석으로 스며들고 반응하게 하여 영양소를 용해한다. 송이버섯은 흡수한 영양소 일부를 소나무가 유기물을 공급해준 보답으로 갚는다. 이는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의 공생관계와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소나무와 송이버섯의 상호의존 전략은 영양소가 풍부한 조건에서는 유리한 입지가 되지 않는다. 영양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토양에서 송이버섯은 소나무의 좋은 짝이 되기 어렵다. 송이버섯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보면 송이버섯은 빈둥빈둥 놀면서 애써 합성한 광합성 산물을 축내는 짝꿍이 된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돕거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상호 의존하는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다. 상호의존의 전략을 구사해서 진화해온 소나무가 그 관계를 버리면 불리한 입장이 된다. 이것이 소나무가 유기물이 많은 땅에서 밀려나서 영양소와 물 이용도이 낮은 능선으로 쫓겨 가는 사연이다.

  식물과 동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성 때문에 어느 한 쪽이 타격을 받으면 다른 쪽도 함께 영향을 받는다. 상호의존성은 상생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에는 공멸을 불러오기도 한다. 상호의존을 통해서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무가 죽음으로써 그 나무의 씨를 먹고살고, 또 씨의 발아를 용이하게 하는 상리공생관계를 가지고 있던 도도(Raphus cucullatus)도 따라서 사멸한 경우가 바로 그 보기이다.7) 거꾸로 도도가 멸종됨으로써 도도에 번식을 의존하던 나무(Calvaria major)도 사멸 위험에 빠졌다는 보고도 있다(Temple 1977). 나무의 열매가 두꺼운 외피를 가지고 있어 도도의 모래주머니를 통과하여 마모됨으로써 발아되었는데 도도가 없는 지난 300년 동안 자연 발아를 하지 못했고 이제는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생물 환경인 공간과 공간의 관계는 비생물적 작용뿐만 아니라 생물이라는 작용체의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생태학 분야에서 연구가 되고 있다. 이를테면 땅과 바다의 관계를 매개하는 생물로 연어의 회유를 들 수 있다. 연어 어미와 새끼는 숲에서 물리적으로 떠밀려온 물질을 기반으로 한 시절을 보내고 바다에서 살이 찐다. 어미 연어는 바다에서 섭취한 물질을 몸에 담아 모천으로 돌아온다. 이 때 연어 몸의 일부는 야생동물에 의해 먹혀서 물질이 땅으로 옮겨진다.

  이러한 관계가 생물의 환경 요소인 공간과 공간의 상호의존성에도 적용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숲이나 경작지로부터 물과 유기물이 낮은 곳에 자리 잡은 습지에 쌓이고, 습지에서 자란 물벌레나 새는 뭍으로 옮겨가 배설을 하거나 죽으면서 두 공간 요소가 특성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오늘날의 생태학은 굳이 높낮이가 다르지 않더라도 경관을 이루는 하나의 공간 요소로서 생태계와 생태계가 이루는 상호의존성을 연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의존성은 생물과 생물의 관계는 비생물 그리고 인간을 포함하는 체계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적용된다. 이를테면 앞서 소개한 오덤(H.T. Odum)은 물질 순환을 통한 도시와 시골의 상호의존성을 풀이했다.8) 시골은 광합성 과정으로 유기물과 산소를 생산하여 도시에 제공하고, 도시는 그 자원을 소비하여 이산화탄소와 영양소를 공급함으로써 서로 의존하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도시의 활동이 과도한 자원을 안겨 오염으로 둔갑하는 관계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보기는 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수평적 상호의존성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위계의 같은 수준에 있는 요소들이 이루는 의존성이다. 체계생태학의 또 다른 숙제는 수직적 상호의존성이다. 생물과 생물, 공간과 공간의 상호의존성뿐만 아니라 체계를 이루는 상위수준과 하위수준의 관계를 말한다. 전자는 군대조직에서 사병과 사병 또는 장교와 장교의 상호의존이라면 후자는 사병과 장교의 상호의존성에 비유될 수 있다. 대학조직이라는 체계와 비유하면 단과대학학과 학부 또는 학과의 관계는 수직적 상호의존성을 가진다. 현재 생태학에서 관심을 가지는 수직적 상호의존성은 위계를 이루는 생물개체-개체군-군집-생태소공간-경관-광역-지구라는 단위들에 맞추어져 있지만 이러한 구분 자체는 연구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생태학계는 이러한 수직적 의존성을 설명하기 위해 위계이론을 빌려온 셈이지만 아직은 그 이론으로 생태계의 특성을 만족할 정도로 해석하는 단계에 왔다고 보기 어렵다(O'Neill 등 1986, 이도원 2001).

  지금까지 생태학이 발굴한 상호의존의 세계에 박혀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다루는 주체가 모두 1:1라는 점이다. 이는 서양의 주고받는 관계로 한정시키는 풍토를 낳았다. 이 영향은 사회 전반에 만연하여 상생이라는 말이 정치권으로 들어가면서 본래의 뜻이 가지고 있던 함의를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또한 충분히 검토되지 않는 내용이라 언급하기 뭐하지만 논의 주제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히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해보면 이렇다.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 보면 상생은 오행설(五行說)에서 나온 말이다. 오행설에 의하면 금(金)은 수(水)를, 수(水)는 목(木)을 목(木)은 화(火)를, 화(火)는 토(土)를, 토(土)는 금(金)을 나게 한다. 이 논리의 바탕은 양자가 주고받는 것이 아닌 점에서 서양 생태학이 발굴한 대부분의 사례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곧, 원래의 상생은 갑이 을을 도와주면 을이 갑을 도와주는 차원 낮은 상호의존성이 아니다. 갑과 을의 관계 정도로 상생의 의미를 깎아 내리는 풍토는 불식되어야 한다.

  오행원리가 체계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을 하필이면 5개로 구분하는 것의 타당성은 여기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여러 구성원들의 흥미로운 상호의존성을 시사하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르긴 해도 불교의 가르침에도 비슷하거나 다른 세상 보기가 있을 줄 안다. 체계에 대한 그러한 해석이 생태학 연구를 풍성하게 할 자극이며, 다른 학문영역과 아울러 진정한 상생을 이끌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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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분야에서의 토론문>


?생태학에서의 시스템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토론문


원 동 욱 (교통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환경론의 위기와 학제간 연계의 필요성


  오늘날 환경문제는 인위적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선진국에서 발생하던 환경재난은 1980년대 이후로는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되었고,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존층 파괴와 산성비로 인해 지구상의 토양이 척박해지고 생물 성장이 교란되고 있으며,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과다 방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기상이변을 초래하여 수많은 지구촌 인류에게 자연 재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문제는 기본적으로 인간들의 근원적 세계관의 산물이며 역사성을 가지고 우리 인간사회를 지배해 온 어떤 큰 사조와 연결해서 이해되고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환경 내지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환경보호와 경제개발과의 관계 등의 관점에서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자신이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동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생적 존재이며, 모든 자연구성물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상에서 존립할 가치를 가진다는 전통적 환경윤리관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서구적 물질문명에서 발생한 개인의 이기주의, 기업의 부도덕성, 정책담당자의 편의주의 등이 오늘날과 같은 환경문제의 발생과 심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왜곡된 의식들은 자연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 물질적 풍요가 인간생활의 최우선적 과제라고 생각하는 물질만능주의, 정부기구를 통해 모든 것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행정관료주의 등과 같이 현대 산업사회를 특징짓는 규범적 전통문화의 상실과 이를 대체한 기술적 서구문명의 만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환경문제는 자연환경의 문제로 국한된 것이 아니며, 또한 단지 인간사회의 문제인 것만도 아니다. 환경문제는 주어진 자연환경에서 부존자원의 한정과 자정능력의 한계를 초월함으로써 발생하지만, 이를 초월하도록 하는 원인은 자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왜곡된 의식과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다.

  따라서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연환경의 파괴 및 오염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에 대처할 수 있는 환경기술의 개발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왜곡된 환경의식의 개선과 모순된 사회체제의 개혁이 필요하다. 즉 오늘날 환경위기는 자연환경-인간사회의 총체적 문제로서 발생하며, 이러한 총체적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련 학문분야들이 통합적으로 ― 최소한 학제적으로 ―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총체적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학제적 환경연구는 첫째, 분절된 학문체계에서 서로 이해될 수 없을 정도로 전문화된 용어나 개념들을 교류(공유)하고 개별 전문분야의 연구 성과물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며, 둘째, 지나치게 분화되어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환경관들(예, 기술중심주의/생태중심주의, 자연보호주의/사회개량주의 등)에 대해 합의된 이념을 설정하고 이를 지향할 수 있도록 해주며, 셋째, 환경문제의 발생원인을 복합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이에 대한 종합적인 처방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며, 넷째, 특정(국지적, 국가적, 국제적 규모이든 간에) 환경문제의 발생에서도 가능한 여러 가지 원인들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어떤 원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는가를 밝히고 이에 대처해야한다.

  자연환경-인간사회의 총체적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문제가 발생하는 각 측면들에 관한 개별적 고찰뿐만 아니라 이들 간을 연계시켜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환경문제는 그 현실적인 심각성과 더불어 이를 규명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학문적 연구에 있어서의 혼돈으로 인해 가중되고 있다. 특히 환경연구에 있어 학문체계의 분절, 즉 자연과학적, 공학적, 인문과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의 분리와 이들 간 학제적 관계의 단절은 환경문제에 내포된 여러 측면들, 즉 생태환경의 파괴와 오염의 실태, 기술적 환경통제와 관리, 환경에 대한 행동과 의식의 왜곡, 사회체계의 모순과 갈등 등을 각각 분리시켜 논의하도록 함으로써 총체적으로 발생하는 환경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도록 한다. 환경과 사회에 관한 인간의식의 발달과 학문체계의 분화 또는 분절은 사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발되었다. 동양사상에서 자연환경과 인간사회간의 관계는 서구의 근대의식이 도입되기 전까지 대체로 미분화된 상태로 존재했으며, 이에 따라 오늘날 분절된 환경의식이나 학문체계를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에 어떤 대안으로 흔히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적 동양의식은 실제 복잡하게 분화된 현실세계를 적절하게 포착하고 그 속에서 환경문제가 유발되는 근본적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늘날 환경문제로 인한 현실적 심각성뿐만 아니라 이를 규명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학문적 언술에 있어서의 혼돈으로 인해 환경의 위기와 동시에 환경론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환경론의 위기는 환경문제에 내포된 여러 측면들, 즉 자연환경의 파괴, 환경에 대한 인간의식의 왜곡, 또는 환경과 관련된 사회체계의 문제성 등을 각각 분리시켜 논의하도록 하는 학문체계의 분절, 즉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의 분화와 이들 간 학제적 관계의 단절에 기인한다. 또한 학문체계의 이러한 분절과 상호관련된 환경문제 연구방법론의 이분법적 인식 틀은 환경론의 위기를 가중시켰다. 서구사회의 의식체계 일반과 학문적 사상체계의 전통에서 형성된 환경론의 다양한 인식방법들은 흔히 환경결정론/환경가능론, 기술중심주의/생태중심주의, 또는 사회경제적 접근/자연생태적 접근 등으로 이분화되었고, 이렇게 이분화된 환경론은 환경문제의 총체적 접근을 불가능하게 했다. 물론 환경문제 자체는 인간과 환경간의 갈등, 또는 인간-환경관계(생태계)와 사회체계간의 모순에 의해 유발되고 따라서 오늘날 환경론의 이분화는 이러한 양자들 간의 대립과 긴장관계를 반영한 것이지만, 이러한 갈등이나 모순은 분절된 학문체계, 이분화된 연구방법론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이러한 환경론의 문제성 또는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현실 환경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기존의 환경론을 재구성하여 통합된 이론체계를 정형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체제와 상호의존


  생태학은 자연과학적 환경연구의 바탕을 이루는 대표적인 전통적 이론체계이며, 생태중심주의적 환경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함의한다. 이에 의하면 자연환경은 수많은 구성요소들(기본적으로 미생물을 이루는 무기환경, 생산자로서의 녹색식물, 소비자로서의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그리고 분해자로서의 박테리아)의 순환고리로 형성된 복잡하고 역동적인 총체적 체계, 즉 생태계를 이룬다. 생태학에서 제기되는 체계와 상호의존의 개념은 국제정치학에서도 적용되는데, 여기서는 주로 국제체제(체계)와 상호의존의 관점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려 한다.

 

  국제체제(international system)란 국가간에 상호작용과 연관을 주고받는 국제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제관계를 국가중심에서 좀 더 거시적인 틀 속에서 놓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민족국가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적 의미의 국제관계의 출현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국제체제는 비교적 낮은 수준의 교통과 통신, 그리고 상호작용의 산물로서 상호 독립적인 주권국가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과학기술의 발달은 국가간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촉진시켰으며 주권의 절대성이 상당한 위협을 받는 새로운 국제체제를 형성해왔다. 한 국가는 이제 사람과 정보, 상품이 국경을 넘어 유입되거나 유출되는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게 되었고, 세계 각국간에는 정치?군사?경제?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상호의존(interdependence)관계가 형성되었다. 무역에서부터 질병, 난민, 환경 등에 이르는 다양한 국제적 해결을 필요로 하는 이슈의 경우 한 국가의 힘과 의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그 결과 각종 국제기구 및 다국적 기업을 위시한 새로운 행위자들이 국제체제를 이루는 주요한 행위자를 이루게 되었다. 이들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인 행위자로서 국가주권의 절대성에 도전하고 국가간의 상호의존을 심화시켜왔다.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의존(dependence)이란 외부의 힘에 의해 내부의 일이 결정되거나 중대한 영향을 받는 것을 지칭한다. 일방적인 재화나 용역에 있어 의존은 상호의존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다. 상호의존은 이처럼 두개 또는 그 이상의 단위체가 서로 의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상호간의 혹은 상호성이 있는 의존’(mutual or reciprocated dependence)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상호의존은 균등하게 평형적인 상호간의 의존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상당히 비대칭적인 상호간의 의존은 상호의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존에 훨씬 더 가깝지만 어느 정도의 비대칭적인 상호의존은 통상적으로 상호의존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의존은 두 국가 사이에 의존으로 인한 취약성이 크게 비대칭적일 때의 관계를 지칭하며 상호의존이란 이러한 취약성이 거의 동등한 경우를 일컫는다.

  국제정치에 있어서 상호의존이란 어떤 일정한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행위자들에게 있어서 한 행위자가 거래의 내용에 변화를 시도할 경우, 그 결과로 인해 당사자들이 모두 일정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관계를 일컫는다. 국제정치의 현실주의 패러다임은 상호의존을 일국의 타국에 대한 취약성으로 보고 상호의존은 회피되거나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본다. 반면 자유주의의 입장은 상호의존을 국가간 혹은 타행위자간의 상호작용으로 보며 상호의존에서 오는 부담 즉 치러야 할 비용 혹은 대가는 있지만 이 부담을 능가하는 이득이 어느 한편에 또는 양쪽에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자유주의도 상호의존이 취약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의존을 일국의 타국에 대한 취약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의 하나인 상호의존론은 국제체제의 모든 행위자들 간의 연계(connections)에 초점을 둔 것으로 상호의존이 무정부상태에서의 국가간의 안보딜레마를 완화하고 무정부상태에서의 국가들의 행동원리인 자력구제(self-help)에 제한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주의는 상호의존론의 중심개념인 ‘상호의존’과 ‘공동체이익’이 아닌 ‘무정부상태’와 ‘국가이익’을 강조하며 상호의존이 국제사회의 평화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상호의존이 국제사회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인지 갈등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상호의존이 구조적 결과로서 국가간의 지위와 힘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상호의존론은 복합적 상호의존이 더욱 진전, 심화됨으로써 국제체제의 국가간 위계적 서열(hierarchy ordering)을 퇴조시키고 국가들 간의 동등성을 좀 더 강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호의존의 조건은 서로 간에 교역을 증진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선진국들에 적용되고 또한 이들에게만 이득을 가져다주며, 남북 간에 힘과 부에 있어서 더욱 심각하고 고질적인 불균형과 비대칭성을 가져오기도 한다. 서로 의존하고 있는 까닭에 세계 각국은 항상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배려하고 함께 협력하여 생존해 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제사회는 불평등한 구조를 이루면서 국가간 이해대립과 갈등으로 국제적 대립상황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에는 불균등한 비대칭적 상호의존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호의존의 심화는 국제관계의 긴밀성을 가져옴과 동시에 불평등과 종속적 관계 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탈냉전의 국제체제는 패권적인 단극-다극구조에 의해 관리,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구심력을 가졌던 냉전체제와 달리 탈냉전의 세계질서가 다양한 제 분야에서 빈번한 대립과 분쟁들로 인해 복잡한 불안정성(complex insecurity)을 포함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현재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파괴, 자원고갈, 대기오염, 산성비,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 식량부족, 만성적 국제채무, 남북갈등, 마약, 범죄, 테러 등은 세계적 혹은 지역적 수준에서 분쟁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협요소들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들 간이나 비국가적 행위자들 간의 다양한 형태의 협력과 공동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탈냉전시대의 국제체제의 특성은 교통, 정보?통신의 비약적 발달로 국가간 상호의존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치측면에서는 탈국경성을 지니는 소위 ‘범세계적 문제’(global issues)들이 초국가적 안보위협으로 대두되고 있고, 경제측면에서는 특히 금융과 투자를 중심으로 세계경제의 단일화가 가속되고 있어, 다자간 국제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국제질서 관리 방법상의 변화가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 국가간 상호의존의 심화와 연관되어 나타나는 초국가적 위협의 증대와 세계경제의 단일화의 가속으로, 한편으로는 안보체제의 구축이 지체되고 상대이익을 둘러싼 각국간의 이해 상충이 확대됨으로써 새로운 질서관리체제의 정립이 지연될 수 있을 것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각국이 예방?협력외교 노력의 강화 필요성을 인식하고 절대이익의 확대에 대한 기대도 고양되어 국제체제의 안정성 유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또한 배가될 것이다.

  국제체제는 경제체제, 정치체제, 사회 및 문화체제를 비롯하여, 지구 생태계의 구조, 기술체제 등의 하위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즉 기술적, 생태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세계 여러 나라들이 긴밀히 관련되어 있으므로 개별 국가가 이를 해결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상호의존체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지구의 생태계는 오존층의 파괴, 지구의 온난화 현상, 해양오염, 산성비, 삼림황폐화, 토지사막화, 유해폐기물, 핵폐기물 등으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제 문제점들은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일례로 한 지역, 국가에서 발생한 환경문제는 지구 생태계의 상호의존적 특성으로 인해 인위적 경계를 벗어나 전 세계적인 문제로 확산된다. 이러한 환경문제는 안보나 경제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면서 오늘날 국제정치의 3대 주요 의제가 되었다. 국내차원에서건 지구적 차원에서건 환경문제에 대한 고려는 국제안보, 남북관계, 세계무역 등 국제정치 상의 여타 쟁점영역들과의 연계성을 새롭게 창출해 왔으며, 따라서 사실상 쟁점영역의 분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환경문제는 국가중심의 국제체제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동력이기도 한데, 비국가적 행위자들이 쟁점영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영역에 비해 매우 높으며, 개인에서 지구차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수준의 국제체제의 행위자들이 환경문제와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들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행위자들이면서도 안보 등 국제정치의 전통적 쟁점영역과 비교할 때, 특히 정부간 혹은 비정부간 국제기구들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둘러싼 국제체제는 그만큼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안보나 경제영역에서의 국제체제는 ‘갈등’이 주 관심사이며 그 해소가 연구의 목적이지만 환경쟁점의 경우는 환경문제를 둘러싸고 국가간에 벌어지는 갈등보다는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태계 파괴를 막고 또한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국가간의 ‘협력’체제에 주안점을 둔다. 안보나 경제의 쟁점영역에서도 국가간의 협력은 물론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안보나 경제의 경우에는 국가간의 협력부재 그 자체가 곧 직접적인 위협의 존재를 의미하지 않지만 환경의 경우에는 협력부재 자체가 위협의 증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제체제에 대한 상호의존적 관점은 오늘날 국제체제의 현실이 현실주의가 전제로 했던 기본적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안보문제를 상위에 놓고 경제적, 환경적 쟁점영역을 하위로 분류시켰던 ‘쟁점의 서열화’(hierarchy of issues)를 배격하고 있다. 국제체제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제 관계는 과거와 같은 군사력을 잣대로 국가간의 상대적 영향력을 측정하려는 전통적 이론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특히 환경쟁점의 영역에서 국가가 얼마만큼의 효과적 권력(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실주의 패러다임에서 국제체제분석의 유일한 단위로서의 국가만의 설정은 수정되어야 하며, 국제체제에서의 비국가적 행위자의 중요성이 강조됨으로써 국가이익의 개념도 재고되어야 한다.


<물리학 분야에서의 토론문>


?생태학에서의 시스템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토론문


박 형 규 (KAIST부설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목  차

 

1. 복잡성 과학의 핵심질문

2. 거시적 성질과 협동현상

3. 자기조직화와 적응

4. 순환적 연결고리




  1. 복잡성 과학의 핵심질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매우 복잡하고 계층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수많은 별과 행성, 위성, 구름, 흙, 물, 생명체, 궁극적으로는 소립자들로 이루어진 우주, 수많은 종(種)들 사이에 생태적 지위, 먹이 사슬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태계, 소비자로부터 중소기업, 대기업, 거대한 국제 기업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계층구조를 갖고 있는 경제계,  다양한 기초기술과 응용기술, 고급기술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기술계들은 각 계를 구성하고 있는 인자(agent)들 사이에 매우 복잡한 연결망(network)을 구성하고 있다. 수많은 인자들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러한 다체계(many body system)들은 어떠한 보편적인(universal)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각 계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보편적인 틀(formalism)로 이해할 수 없이 단순히 복잡하기만 한 것인가?  또 현재의 다체계들은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형성된 것인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인가?

  동력학적인 측면으로 이러한 계들을 관찰하면, 이 계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보다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새로운 구조들을 창출해 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생태계에서 진화에 의한 복잡한 생물체의 출현, 별들의 진화에 의한 복잡한 은하계의 출현, 경제계에서 교역의 증대에 의한 화폐, 금융기관, 보험회사, 주식시장의 출현, 사회계에서 부락사회, 고대국가, 현대국가의 출현 등이 그 예이다. 그러면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구조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계의 복잡성(complexity)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새로운 구조의 발현이란 복잡성의 증가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즉 발현(emergence)이란 무엇이며, 복잡성의 동력학이란 무엇인가?  또 이 복잡한 다체계들이 궁극적으로 다가가려 하는 곳은 어떤 곳이며, 그 곳으로 가게 하는 추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복잡한 다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질문들이다.




  2. 거시적 성질과 협동현상


  복잡한 다체계가 나타내는 거시적(macroscopic) 성질들은 그 구성요소인 각 인자들의 미시적 성질들을 단순히 선형적으로 합해 가지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복잡성이란 양도 거시적인 양이며, 아직은 아무도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먼저 일반적으로 거시적인 양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물질세계의 다체계를 예로 들어 보자. 액체 상태의 물질이 보이는 출렁거림, 끈적거림 등과 같은, 액체의 고유한 성질인 유동성(fluidity)은 액체 분자들 각각의 성질과는 관계가 없다. 즉 H20 분자로 이루어진 물이나, 탄화수소 분자로 이루어진 오일이나, 용광로에서 녹아있는 상태의 철이나, 출렁거리는 정도와 끈적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유동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액체의 온도를 충분히 내리면 질서정연한 고체 상태로 상전이(相轉移)를 일으킨다. 이 과정동안 계의 구성요소(분자)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계가 보이는 거시적 성질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즉 유동성은 사라지고, 딱딱함, 구부러짐, 뒤틀림 등, 고체의 고유한 성질인 안정성(stability)이 드러난다. 이는 복잡한 계의 거시적 성질들이 구성요소 자체보다는 구성요소들의 연결구조(link structure)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며, 또한 구성요소들의 미시적 성질들이 연결 구조에 따라 비선형적으로 합해져서 거시적인 성질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물질을 질서정연하게 만드려고 하는 에너지와 무질서하게 만드려고 하는 엔트로피가 경쟁하여 높은 온도에서는 무질서한 액체상태가 되고 낮은 온도에서는 질서있는 고체상태가 된다.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거시적 구조를 창출해 내는 협동현상(cooperative phenomena)은 모든 다체계가 보이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물질계에서 거시적 성질을 나타내는 양(유동성, 안정성 등)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미시적 변수들로부터 잘 정의되기 때문에 실제 물질에 대한 실험을 할 때나, 모형시스템에 대한 이론연구를 할 때, 무엇을 측정하고 계산하여야 하는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생태계, 경제계, 기술계 등과 같은 시스템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이 그 시스템의 거시적 성질을 잘 규정할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거시적 양들은 한 가지가 아니며, 연구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다양한 양들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물리학에서처럼 정량적인 연구를 위해서라면 이러한 거시적 양들에 대한 미시적인 정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거시적인 양을 공부하는 전일적인 접근방법은 미시적인 인자들의 특성이나, 미시적 연결고리의 특성을 알아내는 환원적인 연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정성적인 연구를 위해서라면 거시적 양들에 대하여 현상론적으로 접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상호 의존성이란 이러한 미시적 연결고리의 특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물리량(에너지, 엔트로피 등)의 동력학적 전달행태 또는 협동적/배타적 관계를 총칭하는 말인 것 같다. 물질계에서 연구되어온 경험에 의하면, 어떠한 계의 거시적 성질은 이러한 상호 의존성의 자세한 내용보다는 전체적인 분포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연결고리에서 협동적이면 그 강도가 연결고리마다 매우 다르다고 하더라도 거시적인 성질은 본질적인 면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협동적/배타적 관계가 마구잡이식으로 분포되어 있으면, 물리학에서 현재 최대 난제의 하나인 소위 스핀 유리(spin glass)문제가 되어 매우 다른 거시적 성질을 보인다. 이 경우에는 준안정적인(metastable) 구조가 수없이 많아, 시스템은 초기조건에 매우 민감하고 동력학적 경로에 따라 매우 다른 거시적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적인 사회계나 생태계는 이러한 스핀 유리계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계의 거시적인 성질을 대략적으로 알기 위해서, 미시적 연결고리들의 특성을 모두 알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고리들의 통계적인 분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태계, 사회계 등, 매우 복잡한 계에서는, 관심있는 거시적인 양이 무엇인지 규정하기 조차 힘들다. 이는 대부분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질문이 잘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생태계에서는 종의 적합성(fitness)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미시적 적합성이란 어떻게 정의되는가? 만약 정의된다면, 생태계의 적합성은 종의 적합성의 선형적 합으로 표시되는가? 이렇게 정의한 생태계의 적합성이 생태계의 생존가능성과 부합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아직 어려운 문제인 것같다.




  3. 자기조직화와 적응


  생명체가 개입하는 복잡계 (살아있는 계)에서는 대부분 물질계와 전혀 다른 동력학을 보이고 있다. 이 동력학의 주제단어(keyword)는 자체조직화(self-organization)과 적응(adaptation)이다. 최근에 자체조직화 현상은 물질계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강력한 외부환경의 지배를 받는 비평형 물질계들, 예를 들어, 수많은 광자(光子)들이 발맞추어 움직이는 레이저, 수증기 분자들이 대기와 상호작용하여 일으키는 태풍 등이다. 자체조직화 현상이란, 강력한 외부환경 속에서는 처음에는 무질서하고 구조가 없어 보이던 비평형계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복잡하게 구조화가 진행된다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구조적인 복잡성은 가지고 있지만 일단 그 구조에 이르면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 즉 더 복잡한 구조로 진화해 나가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들의 복잡성은 정체되어 있다. 반면에 살아있는 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구조의 발현을 통해 구조적 복잡성을 증대시켜 나간다. 이러한 현상은 살아있는 계가 외부환경에 대해 끊임없이 적응해나가는 새로운 동력학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가 멀리 떨어진 먹이에서 분산되어 나오는 먹이분자들을 감지하여 그 밀도가 보다 높은 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박테리아 유전자 속에 들어있는 유전정보(내부모형)에 의해 이루어 진다. 이러한 유전정보들은 보다 나은 생존 가능성을 위하여 학습과 진화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며 더욱 고차원적인 행위를 창출하기 위해 더욱 더 복잡해 진다. 즉 살아있는 계는 외부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구조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든다. 살아있는 계가 적응을 통해 자신의 복잡성을 증대시키다가 어떤 임계치에 이르면 더욱 복잡한 새로운 구조(고등 생명체)가 발현하게 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생태적 지위가 형성되고 계층적 구조를 심화시키게 된다.

  복잡계가 보이는 일반적인 구조적 특성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즉 아주 작은 미시적인 구조로부터 거시적인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크기의 구조가 존재하며, 이러한 구조들이 계층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양새를 쪽거리(fractal)라고 부른다. 또한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계는 외부 자극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극을 받은 일부분만이 아니라 계 전체가 외부 자극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마치 옛날 부락사회일 때는, 지구 한 편에 있는 부락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더라도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리적으로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전세계 국가가 교역을 통해 연결망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작은 국가의 경제적 급변이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과 같다. 쪽거리 구조가 진화에 의해 보다 심화되면 될 수록 작은 변화가 커다란 재앙을 불러오게 될 수 있으므로, 세계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세계화를 통하여 연결망이 촘촘하여지는 것이 과연 인류에게 좋은 것일까 생각해 본다.




  4. 순환적 연결고리


  마지막으로 오행에서 나오는 순환적 연결고리는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현대이론인 자체촉매순환(autocatalytic cylce)과 유사하다. 즉 A가 B를 만들어 내는데 촉매적 역할을 하고, B가 C를 만들어 내는데 촉매적 역할을 하고, C가 D를 등등..., 이 후에 마지막으로 Z가 A를 만들어 내는데 촉매적 역할을 하는 과정으로 인해 전체과정이 닫히게 되면, 즉 순환과정이 되면, A,B,C,...Z 물질들이 계속적으로 증폭 생산되게 되어, 생명체의 근본으로 불리우는 아미노산의 생성이 도저히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수 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모든 물질의 근본적 원소를 몇 가지 설정하고 이들의 순환적 고리를 물질세계의 중요한 동력학으로 본 불교에서는 생명출현의 근원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이 아닐까?

<불교생태학 분야의 논평문>


불교생태학에서의 시스템과 상호의존성


김  종  욱 (동국대 불교학과 연구교수)



  1. 시스템과 상호의존성


  (1) 시스템과 법계(法界)


우리는 시스템(system)이라는 말에서 단순히 ‘체계’나 ‘조직’을 떠올리지만, 현대의 과학에서 시스템은 복잡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닌 어떤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복잡하다는 것은 풀지 못한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위 차원에서는 도저히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 상위 차원에서 급격하고도 새롭게 출현하여, 일면적 단순성(simplicity)만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다면적 복잡성(complexity)9)을 띠는 현상을 가리킨다. 창발(創發, emergence)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돌발적 출현 현상을 우리는 단백질과 세포, 신경세포와 뇌, 개별 생물과 생태계 사이의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세포와 뇌와 생태계라는 상위 차원은 각각의 하위 차원을 구성하는 부분적 요소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화로운 통합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포 내에서 자체적으로 소화하고 분열하는 생활체의 현상은 단백질에 담긴 고분자 화합물이라는 물질적 성질들 그 이상의 것이 되고, 뇌의 심리 현상 전체에서 일어나는 전일적(全一的) 조화는 개별 신경세포가 지닌 전기 화학적 성질들 그 이상의 것이 되며, 생태계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환경과의 자기조절적인 조화는 대사와 생식으로 작동하는 개별 생명체들의 유기체적 생사 현상 그 이상의 것이 된다.

이것은 전체는 부분들의 합 그 이상이며, 이처럼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창발성에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렇게 자연의 생명 계열이 창발적 복잡성에서 이루어지는 이상, 부분들의 집합이 곧 전체라고 간주하여 부품들의 환원적 조작을 통해 전체를 조작하려는 근대의 기계론적 발상은 더 이상 자연과 생명을 올바로 이해하는 관점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생명의 계열이 그토록 복잡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며 연결되고 있는 것은, 그런 조화가 성립하고 있는 계열에 속한 수많은 조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 의존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생명의 세계에서 그 본질은 이런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에 있으며, ‘생태계’란 이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적합한 삶의 터전을 이루고자 생물과 그 환경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의 체계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생태계의 본질로서의 이 ‘상호의존성’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연기(緣起)이다. 연기(prat?tyasamutp?da)란 세상의 모든 것은 무수한 조건(prat?tya)들이 서로 화합(sam)하여 발생(utp?da)한다는 것을 가리키며, 그러기에 영어로는 interdependence(상호의존성)라고 옮긴다.10) 그리고 이처럼 ‘여러 조건들이 화합하여 생기한다’는 뜻의 중연화합생기(衆緣和合生起) 속에 이미 상호의존성으로서의 연기와 중생(衆生)이 포함되어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는 이런 상호의존성에 의하여 성립된 생명체를 중생이라고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는 시작도 끝고 없는(無始無終) 직간접의 조건들(因緣)의 연쇄적 그물망(因陀羅網)으로 표상되며, 길가의 이름없는 풀 안 포기에도 전 우주의 역사가 함장되어 있듯이, 모든 것에는 모든 것이 층층이 겹쳐 융섭하는 것(重重無盡緣起)이 마치 연씨가 서로 겹치는 것과도 같으므로 우주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표현된다. 또한 이런 인드라의 그물망이나 중중무진의 연화장세계를 이루게 하는 원리가 연기이고, 이 연기야말로 삼라만상의 근본 이치로서의 다르마(Dharma), 즉 법(法)이므로, 연기에 의해 성립된 온 생명의 큰 바다를 법계(法界)라고 부른다. 즉 연기라는 원리에 의해 관류되어 있는 세계, 상호의존하여 이루어진 모든 존재자로서의 일체법이 법계(法界, dharma-dh?tu)이고, 이런 연기한 제법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성격, 또는 연기한 모든 존재자를 그렇게 존재하게 하는 원리로서의 연생성(緣生性, prat?tyasamutpannatva)은 법성(法性, dharmat?)이다. 그리고 이런 법성의 법계를 자연(自然)이라는 한자식 표현에 맞추어 볼 경우 법연(法然)이 된다. 따라서 불교적 의미에서 자연은 ‘법연’이고, 에코 시스템의 체계 또는 자연계는 ‘법계’이며, 그런 자연의 본성은 연기성으로서의 ‘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인에게서 자연의 본성이 제작성(고대)과 창조성(중세)과 기계적 인과성(근대)이고, 도가에서는 무위자연성(無爲自然性)인 데 비해, 불교에서는 무상성(無常性, anityat?)과 무아성(無我性, an?tmatva)과 공성(空性, ??nyat?)을 특징으로 하는 상호의존성, 즉 연생성이 자연의 본성(법성)인 것이다. 이러한 연생성으로서의 법성이야말로 모든 존재자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제법실상(諸法實相, dharmat?)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의 일치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에코 시스템으로서의 생태계와 법계가 그 본질을 상호의존성과 연기성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좀 더 살펴 보기로 하자.


  (2) 상호의존성과 연기(緣起)


생태계란 생물과 그 환경 간의 상호작용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생태계는 ‘생물’이라는 생물학적 구조와 생물을 제외한 ‘환경’이라는 무생물학적 구조로 구성되는데, 무생물학적인 ‘환경’은 물이나 흙이나 공기 중에 들어있는 각종의 원소들과 온도변화나 습도나 태양광선 등의 기상학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생물’은 식물과 동물과 미생물로 나누어지며, 이것은 다시 생태계 내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와 분해자로 나뉜다.

생산자(producer)인 식물과 소비자(consumer)인 동물과 분해자(decomposer)인 미생물 각각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생물군집이라는 공동체가 유지되며,  생물학적 요소들이 생산-소비-분해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생태계의 모든 물질은 결코 고정되지 않고 순환한다. 생산자에 의해 흡수 동화된 무기물은 유기물로 합성된 다음, 소비자에 의해 영양 단계별로 이용되고, 그렇게 축적된 유기물은 분해자에 의해 무기물로 환원된 후 다시 생산자에게 흡수되는 것이다. 이것은 생태계의 구조가 생산자-소비자-분해자 사이의 물질적 ‘순환성’과 각 단계 서로간의 ‘상호의존성’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분해되지 않으면 생산될 수 없고 생산되지 않으면 소비될 수 없다는 사실 속에 담긴 순환성과 상호의존성이 생태계의 구조적 원리인 것이다.

생태계의 구조 속에 담긴 상호의존성의 원리는, 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지구상에 생물이 살기 좋도록 스스로 안정된 체계를 이루어왔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지구 탄생 초기의 원시 대기에는 이산화탄소가 98%를 차지하고 있었고 산소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나, 현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0.03%로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 산소는 21%로 크게 늘어났다. 이런 엄청난 변화는 대륙의 형성과 아울러 생겨난 석회암층이 이산화탄소를 가두어 두었고, 바다 속의 원시미생물이 산호초를 형성함으로써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식물이 탄생하여 광합성 작용과 호흡작용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일 등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약 6억년전에 형성된 현재의 산소 농도 21%는 그 후 약 1억 9천만년전에 포유동물이 출현하고, 그 후 약 10만년전에 현대인과 유사한 네안데르탈인이 나온 뒤에도 흔들림 없이 균형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것은 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의 형성을 위해 자기를 조절하여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해온 결과이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생태계의 구조적 원리가 순환성과 항상성에 있고, 이 양자는 상호의존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 즉, 생명 과정들 상호간의 의존성이야말로 모든 생태적 관계의 본질이다. 생태적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생명의 그물(web of life)이라고 하는 거대하고 복잡한 관계들의 연결망(network) 속에서 상호 관련되어 있다. 그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본질 자체를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획득한다. 다시 말해 한 개체의 고유한 본질이란 원래부터 타고난 자기만의 불변적인 어떤 것(essence)11)이 아니라, 전체 네트워크상의 함수(function) 관계 속에서 시공적 인연에 따라 설정되는 잠정적인 어떤 것(prajnapti, 假施設)이다. 따라서 개체 속에 전체가 반영되어 있고, 전체 속에서 개체는 각각의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즉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여럿 가운데 하나가 있는 것이다.(一中一切 多中一) 이처럼 상호의존성에 입각해 부분과 전체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생태계이다.

그런데 상호의존성이므로 순환성과 항상성이 된다는 원리를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연기(緣起)이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고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 것이 된다. 즉 모든 것은 무수한 조건들이 서로 의존 화합하여 성립하는 것이므로, 전혀 새로운 것이 생겨나거나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반복 순환하는 것이며, 더 늘어나거나 더 줄어듬 없이 그 관계의 그물망 전체는 언제나 평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반야심경??에서는 “이 모든 사물의 형상이 공하니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며,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는다”(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增不減)고 표현한다. 이에 대해 ??반야심경주해??에서는 “제법의 당체가 곧 진공실상임을 알았으니 …… 생멸이 없거늘 …… 어찌 증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해석하고 있다.12) 이것은 무자성(無自性)의 공이어서 불생불멸이고 부증불감이라는 것, 즉 비실체성이기에 순환성과 항상성이 성립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체법에는 고정된 자성이 없어(無自性) 공(空)하다고 하는데, 이는 불변적 실체성에 대한 부정임(破邪)과 동시에 상관적 연계성에 대한 긍정(顯正)이다. 이처럼 연기와 공이기에, 즉 상호의존성과 비실체성이기에, 순환성과 항상성이 생태계의 구조적 본성을 이루며, 생태계를 불교적으로 표현하여 법계(法界)라고 하는 것이다. 특히 연기는 곧 무아이고 무자성의 공이라 하여 상호의존성을 비실체성의 관점에서 해명하는 것은 상호의존성이라는 원리를 매개로 하여 불교와 생태학을 만날 수 있게 해줌과 아울러, 상호의존성의 원리를 비실체적 사유( → 空觀)라고 하는 현대철학의 주류 경향 속에서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레고 사유와 그물 사유


생태학과 불교가 공유하는 ‘상호의존성’이란 수많은 조건들 간의 끊임없는 상호 관련작용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성의 사유는 관계론적 사고방식을 말하며, 다중적 조건들의 끝없는 얽힘과 되먹임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성의 사유는 일종의 ‘그물의 사유’이다. 이런 ‘그물의 사유’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네트워크의 사유’이고,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인드라망의 사유’이다. 이에 비해 근대적 합리성에 기반해 산업적 생산효율성과 자연의 도구적 이용성을 강조하는 기존의 주류 서양 사유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개별자들의 독자성과 그들 본질의 영속적 고정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실체론적 사고방식이며, 마치 레고 벽돌로 집짖기를 하듯 최소자로 환원된 요소들의 조합을 통해 세계를 기계적으로 축조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런 식의 사유는 일종의 ‘레고의 사유’이기도 하다.

레고의 사유에서 ‘관계’란 언제나 실체적 관계이기에, 실체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실체들간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된다. 그러나 그물의 사유에서 ‘관계’란 비실체적 관계이기 때문에, 관계의 네트워크가 먼저 있고 함수상의 위치에 따라 그때그때의 사건들이 있게 된다. 레고의 사유가 실체(substance, object, 物)를 지향한다면, 그물의 사유는 사건(event, Ergeignis, simulacre, 事)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실체 지향의 레고 사유에서 ‘인과’ 관계는 주어진 초기 조건이 항상  동일한 결과를 기계적으로 담보하는 ‘선형적 인과’이며, 이런 ‘닫힌 인과’?‘협소한 인과’?‘단선적 인과’의 집합체가 근대적 의미에서의 자연(nature)이다. 이에 비해 사건 지향의 그물 사유에서 ‘인과’ 관계는 초기 조건과 결과가 복잡한 피드백으로 얽혀있는 ‘비선형적 인과’이며, 이런 ‘열린 인과’?‘확장된 인과’?‘복합적 인과’들로 이루어진 시스템이 생태계와 법계(法界)이다.

레고의 사유에서 ‘전체’는 레고 개수의 합이기에, 부분의 합이 곧 전체이지만, 그물의 사유에서 ‘전체’란 서로를 반영하는 무시무종의 그물망 자체이므로, 전체는 부분의 합 그 이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물 사유에서 ‘전체’가 자기조직성을 통해 자치와 자율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인데 비해서, 레고 사유에서 ‘전체’는 그런 가능성을 구현하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또한 레고의 사유에서 ‘부분’은 하나의 레고 조각처럼 전체의 하부일 뿐이기 때문에, 전체에서 쉽게 떼어낼 수 있고, 그래서 조작과 통제와 지배가 용이하다. 그러나 그물의 사유에서 ‘부분’은 인드라망의 보석 구슬처럼 전체를 반영하므로, 전체에서 그것만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조작과 통제와 지배를 기획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레고의 사유는 기본적으로 실체론(自性論)이기에, 거기서 ‘고유성’이란 원래부터 타고난 자신만의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레고의 사유는 전체와 무관하게 자기만의 고유성을 발현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그럴수록 전체와의 단절로 인해 부품화되어 대체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관계론(緣起論)인 그물의 사유에서 ‘고유성’은 오직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함수적으로 주어지는 잠정적 특이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물의 사유는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고유성을 발현하기를 지향하며, 전체와의 그런 유기적 관련으로 인해 부품적 대체가능성의 정도는 그만큼 낮아진다.

이런 상이한 관점의 차이는 생태계의 한 특징인 ‘항상성’을 이해하는 데서도 발견된다. 실체 지향의 레고 사유에서 항상성은 변화를 부정하는 항상성, 즉 constancy이다. constare가 substare를 함축하듯이, 다시 말해 함께(con) 계속 섬(stancy)이 변화 밑에(sub) 계속 그대로 섬(stance)을 시사하듯이, 레고적 항상성은 불변적 실체성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레고의 사유에서는 신과 자아처럼 항상 불변의 자기 동일성이 그 궁극적 지향점이 된다. 그러나 생태학적 그물의 사유에서 항상성은 언제나 변화를 인정하는 항상성(homeostasis)이다. 이것은 마치 파도타기나 외줄타기에서처럼 변화 속에서 혹은 변화를 통해서 비슷하게(homeo) 균형(stasis)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처처즉응(處處卽應)의 민감함이 유지되기 위해선 딱딱하게 고정된 항상 불변의 동일성을 비워내고(無自性 空), 어느 극단에도 치우침 없이 다양한 차이를 존중하는 유연하고 개방된 평형(中道)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볼 때 레고의 사유에서는 부분과 전체가 상호 대립하여, 一非多 多非一이어서, 전체론과 개체론이 이원적으로 분화되지만, 그물의 사유에서는 부분과 전체가 상즉 상입하여, 一卽多 多卽一이어서, 전일론(全一論)이라는 방식으로 비이원적 조화를 이룬다고 하겠다. 우리가 사소해 보이는 하나의 사건 속에도 우주 전체의 역사성이 담겨 있다고 통찰할 때, 그 사건의 의미는 가장 존중받을 수 있다. 이처럼 하나 속에서 전체와의 관련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가 전체에 종속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가 전체를 반영하는 무게와 가치를 지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하나 속에 전체성의 무게가 침투해 들어옴(相入)으로써, 모두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상호의존의 연기(緣起)를 가리킨다면, 그리하여 하나가 전체만큼의 무게를 지니므로(相卽), 모두가 대등하게 소중하다는 것은 상호존중의 자비(慈悲)를 가리킨다. 이처럼 ‘緣起 - 空 - 慈悲’라는 불교의 근본 사상을 ‘상호의존성 - 비실체성 - 상호존중성’이라는 생태학적 함의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불교생태학이며, 이런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생태학이 지닌 과학성은 철학성과 종교적 실천성으로까지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시스템(system)은 체계(體系) 또는 계(系)로 옮겨지기도 한다. 영어권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오늘날 세대들에게 영어 발음과 거의 비슷하게 들리는 시스템이라는 용어는 그다지 생소하지 않고, 체계와 계는 한자어라 우리말 표기에서 어느 한 쪽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이 글에서 세 단어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특별히 체계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2) organicism을 유기체론이라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생물의 다른 말인 유기체(organism)가 아니더라도 유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유기론이 더 적당하다.


 3) complexity는 complication 과 다른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복잡성이라는 말보다 복합성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4) 작용체(object)는 발표자(이도원 2001)가 이전에 객체라고 했으나 의미가 맞지 않은 듯하여 이 글에서 고쳐 사용하는 용어다. 이는 체계의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맺어주는 매개자를 말한다. 이를테면 필자가 이전에 몰랐던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좋은 정보를 제공할 때 관계가 형성된다. 이 때 돈과 정보가 작용체다. 생물과 생물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작용체는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정보로 구분할 수 있다. 두 생태계 사이로 생물이 오가면서 관계가 생길 때 생물은 작용체가 된다. 그 경우 생물을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정보가 복합된 작용체로 볼 수 있다.


 5) 생태학에 적용되는 위계이론(hierarchy theory)에 대한 좋은 길잡이는 O'Neill 등(1986)이다.


 6) 페인은 이렇게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서 마지막에 위치하는 육식동물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쐐기돌이 빠지면 다리가 무너지듯이 그 종이 빠지면 생물군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나는 그 용어를 한글로 옮길 때 중추종으로 했다. 뜻 그대로 옮기면 쐐깃돌종(keystone species)이 되겠지만 어쩐지 학술용어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그렇게 했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잘한 짓 같지는 않다. 그러나 돌아가기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그냥 중추종이라고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옮기고 있다.


 7) 도도는 몸무게가 적어도 12 킬로그램은 되었으며 약 23 킬로그램에 육박하여 타조보다 조금 컸던 새였다. 그들이 살고 있던 인도양 서부 마다가스카르 가까이 있는 모리셔스(Mauritius)섬에는 천적이 될만한 포유류가 단 한 마리도 살고 있지 않아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를 못했다. 그들이 살던 천혜의 보금자리에 포르투갈 선원들이 1507년에 처음으로 도착했고, 16세기 말에 당도한 네덜란드인들에게 받게 된 무자비한 대접을 견디지 못하고 1690년 무렵에는 지구상에서 멸종되었다. 지금은 그림과 유럽의 박물관에 2개의 머리와 부러진 다리, 그리고 많지 않은 골격만 남아 있어 도도에 대한 이야기는 불확실성 속에 가려져 있다. 도도는 1681에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Temple 1977). 이충효(1998)가 옮긴 책에는 1690년 무렵 사라졌다고 하고(324쪽), 1667년에 멸종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341쪽), 실제로 정확한 멸종 시기를 몰라 의견이 분분하다고 밝히고 있다(343쪽). 손순창의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새 도도’에 도도한 내용을 볼 수 있다.


 8) 오덤의 분석에서 도시와 시골의 상호의존성을 정보라는 작용체로 풀지 못한 것은 그 작업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9) 복잡하다는 표현에는 complex와 complicated가 있다. 전자는 날줄과 씨줄이 섞여 직물을 이루듯이 나름대로의 ‘질서있는 무질서’를 의미한다면, 후자는 과도하게 겹쳐져 뒤얽혀 있는 것처럼 전혀 ‘질서 없는 무질서’를 뜻한다. 그러므로 complexity는 단순한 무질서의 혼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구조가 붕괴되고 신 구조가 창출되었다가 다시 붕괴되고 또 창출되는 혼돈과 질서의 피드백(feedback)적인 복합성을 의미한다.


10) 불교에서는 인과와 연기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렇게 되면 서양식의 기계적 인과성과 구별되는 연기성의 훌륭한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한 사건을 異時的 인과 관계로 볼 경우, 시간적으로 분리된 원인과 결과 중 어느 하나를 파악함으로써 사건 전체를 장악하여 이용할 수 있으나 한 사건을 동시적 상호의존 관계로 볼 경우, 그 사건을 이루는 다중적으로 일시에 중첩된 조건들을 낱낱으로 분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사건은 전일적인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복잡성(complexity)의 과학에서는 근대 기계론의 획일적이고도 단순한 선형적(linear) 인과 관계를 넘어서, 환류적이고도 복잡한 비선형적(non-linear) 상호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기계론적 인과성에 감춰진 권력적인 속성을 파헤쳐내기 위해서도, 상호의존성으로서의 연기는 단순한 인과와 구분되어 성찰될 필요가 있다.


 11) 본질이라는 뜻의 essence는 어원상 계속 ‘있어온 것’이라는 불변적 지속성을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다.


 12) ??般若波羅蜜多心經註解??(??大正藏?? 33, p.570 下). “旣了諸法當體 卽是眞空實相 …… 旣無生滅 …… 豈有增減乎”